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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연설 비교분석]양극화·재벌 문제 진단 유사해도…중향평준화 vs 경제민주화
경제 이슈로 맞붙은 정진석·김종인·안철수, 해결책에선 뚜렷한 차이
입력 : 2016-06-22 오후 5:52:59
[뉴스토마토 최한영·박주용기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20일부터 22일까지 하루씩 실시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저성장으로 인한 경제 구조의 변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해결 방안을 놓고는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놨다.
 
개헌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행보에 맞춰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지만, 김 대표는 국회 내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하며 개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여야의 간극도 여전했다. 여당은 ‘적극적인 제재’를, 야당은 ‘제재와 협력을 동시에 병행하는 대응책’을 제시했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 ‘강남역 살인 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어느 때보다 국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여야는 한뜻으로 수습책 마련에 고심했다. 치안 시스템과 치안 인력 강화 등 외연적인 방안부터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등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극화 문제 심각' 공감했지만 해법은 차이
 
각당 대표들은 더 이상 1970~80년대와 같은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며 공정한 분배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정 원내대표는 “한국 경제는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으며 더욱 문제인 것은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거나 국민들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간 후순위로 미뤄뒀던 분배문제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도 “이제 4% 이상의 고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무지하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라며 “공정한 분배구조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평등 문제 해법을 놓고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정 원내대표는 이른바 ‘중향평준화’를 내세웠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여러 복지혜택이 많은 정규직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 등 이른바 ‘노동 4법’의 국회 통과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그러나 야권은 이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근로자들의 비정규직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김 대표는 경제불평등 해소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통한 포용적 성장’이 시대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0년간 지속된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질·비물질적 혜택이 전 사회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지속하는 포용적 성장을 위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소득재분배·노동시장·보건의료·교육 등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안 대표는 20대 국회 차원에서 격차 해소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인공지능과 생명과학,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도래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안 대표가 포괄적으로 내놓은 제안이 눈에 띄었다. 과학기술·교육·창업혁명 추진을 위한 ‘미래일자리특위’ 설치를 제안한 그는 “과학기술 역량을 어떻게 축적하고, 교육을 어떻게 바꾸며, 산업·노동부문에서 어떤 구조개혁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일하는 방식도 문제를 중심에 두고 연관 부처와 전문가를 차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나라는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시점에 있다”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 제공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학습기회 등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정 원내대표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쳤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중향평준화'를 강조했다. 사진/뉴스1
 
◇김종인, '재벌개혁' 지론 구체적으로 제시
 
대기업과 재벌문제에 관해서는 정 원내대표와 김 대표 모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안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정 원내대표는 “일부 대기업은 우리 경제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어종 ‘배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책임경영을 강조했다. 연설 중 ‘거대경제세력’이라는 말을 10여차례 언급한 김 대표는 “이들의 특권적 탈법적 행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정상적인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도 일부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대한 기득권을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법을 두고는 역시 많은 차이를 보였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3세의 불법적인 경영권 세습문제에 중점을 둔 정 원내대표는 독과점 규제를 통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는데 그쳤다. 반면 김 대표는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한 상법 개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과제로 내세웠다.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상법 개정과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위에만 부여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김 대표가 재차 강조하며 실현 의지를 드러냈다. 안 대표는 대기업이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 집중하고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의 근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천을 강조했다. 사진/뉴스1
 
◇최저임금 인상 없이 정규직 양보만 강조한 정진석
 
여야 3당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식이 같았다. 다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과 고통 분담의 주체에 있어서는 차이가 뚜렷했다. 김 대표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을 개정해 청년고용할당제를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 한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최저임금 인상도 절실한 과제다. 오는 2020년에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야권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에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이 많은 정규직이 우선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일방적 고통분담이 아닌 고소득 노동자의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방안이라는 것이다. 정규직의 ‘양보’만을 강조했을 뿐 저임금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복지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여야 대표들은 모두 동의했다. 다만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에서는 다소 차이가 존재했다. 정 원내대표는 “복지를 위해 세금을 어디에서 얼마나 더 거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선결되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국민연금도 안전하지 못하다. 복지의 구조개혁 문제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도 정 원내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복지를 늘려가는 부분에 있어서 사회적 공론과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며 “20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책임있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가계소득 증가를 통한 복지재원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주거비와 교육비, 통신비 등 가계의 부담이 큰 생활비를 줄여 가처분 소득을 높이고 내수 회복을 통해 복지 지원금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원을 ▲기초연금 20만원 차등 없이 지급 ▲노인일자리 참여수당 40만원으로 인상 ▲보육 시설 투자 등에 사용하겠다는 게 더민주의 계획이다.
 
◇개헌 논의엔 야당들이 더 적극적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공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여의도만의 개헌은 의미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개헌에 거리를 두고 있는 청와대 입장에 보폭을 맞춘 것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김 대표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며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다. 김 대표는 “변화된 시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충실히 보장하고,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등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조속히 개헌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며 “경제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중장기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개헌은 정치영역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민생을 위한 개헌, 경제를 살리는 개헌”이라며 개헌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개헌특위 제안을 두고 여당은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기자들과 만나 “조만간 여야가 이야기할 때 (개헌특위를) 의제에 올려 해봐야겠다”며 “정치개혁특위가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은 같지만 정치개혁특위의 한 줄기로 개헌이 다뤄질지, 개헌특위가 필요한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22일 연설에서 개헌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대체로 개헌에 긍정적인 분위기다. 
 
그동안 개헌론은 유력 차기 대선주자들의 반대 입장에 직면한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한나라당 친이(이명박)계에서 개헌론을 제기했을 때도, 역시 친박(박근혜)계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유력 차기 주자인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대표가 개헌 추진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개헌 논의는 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 내 '미래일자리특위' 설치를 제안했다. 사진/뉴스1
 
◇북핵 해결 방법론 간극도 뚜렷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은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정 원내대표는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제재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가 성과를 내기 시작한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에 우리가 구멍을 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회 차원의 ‘남북 국회회담’ 추진을 국회의장에게 요청하며 제재와 대화가 병행된 ‘투트랙 대북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 국제 정치의 흥정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대미외교, 대중외교로 한반도 문제에 우리 정부가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주한 중국·러시아 대사를 면담하는 등 잇따른 안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 대표도 유사한 입장이었다. 튼튼한 안보는 필수적이지만 평화통일의 과정을 만들어가기 위해 대화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지금은 제재국면이지만 이후 (북한과) 교류가 시작될 때 적극적인 경제교류, 민간교류, 문화교류를 통해 그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 강남역 살인 사건, 구의역 스키린도어 사고 등 여러 사건사고들로 인해 어느 때보다 안전의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정 원내대표는 CCTV 확충과 범죄 취약지대 진단, 치안인력 확보 등 치안시스템 강화와 상습 범죄자의 강력한 처벌 등 외연적인 내용의 수습책을 내놨다. 반면 김 대표는 “국회가 시장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보완장치를 만들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사고의 본질을 불평등과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안 대표는 “우리 사회를 불안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바꿔야 한다”며 “국회는 안전을 위한 투자에 자원을 우선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야당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로 불거진 법조계의 전·현관 비리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김 대표는 “정운호 비리게이트는 전관예우의 고질적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전관예우와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관련법 개정뿐만 아니라 현직의 법조윤리 확립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안 대표도 “사법정의와 조세정의를 비롯해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 미래와 희망도 없다”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비처)를 포함한 제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최한영·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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