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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인사이트)"다양성이 경쟁력"…여성차별 깨는 실리콘밸리
채용과정 바꾸고 육아문제 해결하며 '다양성·포용성' 정책 확대
입력 : 2016-06-29 오후 12:00:00
국내 30대 기업의 평균 직원성비는 82로 조사됐다. 여성이 전체 직원의 20% 정도에 불과해 성비불균형이 심각하다. 성공신화를 써온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성비불균형을 지적받고 있다. 현지 정부와 언론은 여성의 비중이 30%도 안되는 기업들에 개선을 촉구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인 페이스북, 애플, 구글은 최근 각각 31%, 31%, 30%인 여성 비율을 공개했다. 50%에 이르는 미국 내 다른 산업과 비교해 한참 낮은 수치다. 특히 기술직에서 여성의 비율은 10%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남녀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주제를 도입했다. 창의성 증진과 생산성 향상의 주요 요소인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고정관념을 바꾸는 인력관리 제도의 도입으로 고용평등에 나섰다.
 
올해 초 실리콘밸리에서 몇몇 여성 고위 간부들이 모여 기술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200명에게 일터에서의 성차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밸리의 코끼리'라는 제목의 이 조사는 실리콘밸리의 여성 불평등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엘렌 파오의 성차별 소송 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지난 2012년 아시아계 미국 여성 파오는 자신의 고용주였던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캐피탈 클라이너퍼킨스커필드바이어(KPCB)를 법정에 제소한 바 있다. 파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렸으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1심 재판에서 패소해 항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 소송으로 실리콘 밸리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부각되고 기술 기업들의 불균형한 직원 성비가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설문조사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응답한 여성 중 60%가 원치 않는 성적대화를 겪었다고 답했고, 66%는 사교나 네트워크를 위한 행사에서 소외당했다고 밝혔다. 90%는 컨퍼런스나 회사연수 등에서 성차별적인 행동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일한 한 여성은 "솔직히 다 열거하려면 길다"고 말하며 여성을 소외시키는 네트워크 행사에 대해서 "사실상 '쿠거 나이트(Cougar Night)'가 사무실 바로 옆에서 열리는데 그런 곳에서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업계"라고 소감을 밝혔다. '쿠거 나이트'란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가들과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 사업가들이 모여 사교활동을 펼치는 화려한 파티로 주로 남성 위주로 진행되는 사교 모임이다.
 
미국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는 지난달 기술 산업의 고용 다양성 현황을 알리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가 내놓은 결과는 암울했다. 기술 분야의 여성 및 소수집단 비중은 다른 업계보다 훨씬 낮았다. 관리직이나 고위 간부직을 맡은 여성은 극소수였다. 제니 양 EEOC 의장은 "이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며 워싱턴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것이 미래 경제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중대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의 촉구에 떠밀려 2014년부터 다양성 현황 통계를 발표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생겨났고 최근에는 여성과 소수집단을 환영하는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해결책은 다양하다. 어떤 기업들은 취업 지원자 가운데 여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남녀의 보수 차이를 없애고 관대한 가족휴직제를 도입해 실력 있는 여성의 이직을 막는 기업들도 있다. 몇몇 기업들은 채용과 승진 과정에서 뿌리 깊은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다양성 컨설팅회사 ‘레디셋’의 설립자 이본 허친슨은 "우리가 만들어온 다양성과 포용성 문화 수준이 어떤지 점검하기 시작했다"며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무의식 수준에까지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과정의 '편견'을 깨버린 아사나 
 
최근 가디언은 실리콘밸리 기업들 가운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고용평등에 기여하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협업관리 및 생산성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업 아사나(Asana)는 다양성 문제에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아사나는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패러다임'이라는 다양성 컨설팅회사에 의뢰했다. 패러다임은 사회과학적 조사와 분석으로 문제점을 찾아줬다. 다양성 노력을 방해하는 무의식적인 편향이 무엇인지 분석하기도 했다. 이력서를 익명으로 처리해 지원자의 성별이나 인종을 알 수 없게 하고, 연봉 협상과정을 조정해 여성이나 소수집단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 
 
아사나의 지원자들은 면접 전에 완전히 익명 처리되어 선발된다. 면접관이 후보자에게 컴퓨터 코딩 문제를 던져 주면서 감독하고 후보자가 답을 칠판에 쓰는 전통적인 기술 면접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패러다임의 조사 결과, 다른 방식의 코딩 테스트를 합격하는 여성들이 대개 이러한 면접 방식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신에 후보자들이 각자 면접 장소에서 문제를 푸는 동안 감독자가 자리를 떠나는 방식으로 바꿨다. 아사나의 한 기술 면접관은 "전형적인 칠판 인터뷰는 위협적일 수 있다"며 "새로운 방식은 후보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이 성비불균형을 완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키워드는 ‘다양성과 포용’이다. 사진/아사나
 
'육아' 고민을 해결한 넷플릭스
 
넷플릭스(Netflix)는 여성들이 직장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인 육아 문제 해결에 나섰다. 넷플릭스는 지난해부터 출산을 하거나 입양으로 부모가 된 직원은 1년 동안 무한정 육아 휴직을 할 수 있게끔 했다. 시간제 근무로 변경하거나 근무와 휴직을 번갈아 할 수도 있다. 1년 동안 급여와 급여 외 혜택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넷플릭스의 한 관리기술직 직원은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회사는) 가족이 성장하는 중요한 이 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집에서 뿐 아니라 회사에서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라고 썼다. 
 
버퍼, 투명한 '연봉공개'로 다양성 확보
 
소셜 미디어 스타트업인 버퍼(Buffer)는 2013년 다소 급진적인 결정을 내렸다. 모든 직원의 연봉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회사의 연봉 책정 기준과 산식도 함께 공개했다. 연봉 책정 기준은 시장 가격, 직원의 경력 수준, 지역의 물가 등을 포함했다. 버퍼의 공동창립자인 조엘 가스코이그 회장은 "도입 당시에는 다양성과 포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의 투명성이 다양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버퍼는 공개된 연봉 자료로 성별에 따른 분석을 실시했는데, 여성 직원들의 연봉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트니 사이터 버퍼 포용 담당자는 자사의 연봉책정 기준이 편향적이었음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인 ‘경력’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퍼는 같은 방식으로 다양성에 대한 분석도 실시했다. 회사의 지원자 및 직원의 성별과 인종 분포를 보여주는 통계를 웹사이트에 올려놓았다. 직무 소개에 성별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수정했고, 채용 과정에서 '문화적 적합성'의 중요성도 재고했다. 이러한 모든 결정은 전적으로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버퍼의 설명이다.  
 
'평등'한 인사정책 새로 쓴 클레프
 
인증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형 스타트업 클레프(Clef)는 채용 및 연봉협상 등에 관한 인사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쓴 경우다. 클레프의 공동창립자 비 바이른 회장은 2014년 창업 당시 변호사에게 직원채용에 관한 자문을 받았으나 변호사가 소개해준 직원채용 표준 가이드북에는 다양성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 "멋진 제품을 같이 만들 '동료'가 필요했다"고 말하는 바이른 회장은 새로운 인력관리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을 고용해 다양성과 평등을 위한 인력관리 규정들을 연구했다. 다른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완성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출간하기도 했다. 
 
이러한 클레프의 인사 규정에는 관대한 가족휴직제가 포함돼 있다. 반면 연봉협상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 대개 특권층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채용 결정 기준이었던 '문화적 적합성' 또한 완전히 삭제했다. 이러한 제도 도입이 적합한 시점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바이른 회장은 "회사가 설립되는 날부터 시작할 것을 조언한다"고 전했다.    
 
신지선 국제경제분석가·미국공인회계사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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