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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스토리)새로운 교육 방식을 실험하다…'챌린지 대학' 인기
기존 대학 교육과정 거부…교실·전공·강의 없는 열린교육 지향
입력 : 2016-08-03 오후 12:00:00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크리스틴 오티즈 교수가 그리는 이상적인 대학에는 교실, 전공과목, 강의가 없다. 기존의 학위 과정에 근거한 대학 교육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용적인 연구 프로젝트 위주의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며 학년이나 전공도 구분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좁은 강의실이 아닌 넓은 공간에 모여 난해한 응용문제를 함께 연구한다. 교수나 강사보다는 인터넷에 문제 해결을 위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대학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오티즈 교수의 꿈이 곧 현실이 될 전망이라고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올 여름 오티즈 교수는 새로운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6년간 대학원장으로 재직했던 MIT를 떠난다. 새로운 대학은 5년 안에 개교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대학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다. 교과서 이론에 갇힌 대학 교육을 보다 실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집단인 네스타의 한 연구원은 실용적인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자유로운 학습 과정을 지향하는 새로운 부류의 대학을 '챌린지 대학(challenge-driven university)'이라고 일컬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5년간 중국에서부터 칠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수십 개의 챌린지 대학이 세워지며 대학 교육에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업 디자인, 기술공학 등 챌린지 대학들의 교육 범위는 각기 다르지만 대학 교육에 대한 접근법은 비슷하다. 전통적인 대학 교육 과정과는 달리, 강의, 교과서, 시험제도 등을 없애고 학생들이 실용적인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 학생들은 한 분야를 전공과목으로 선택하지 않고 대개 예술, 인문학, 과학 등 여러 과목이 통합된 주제에 대해서 연구한다. 강의는 소집단 규모로 이루어지며,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주로 여럿이 함께 집단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산학협력 및 기업들과 연계한 프로젝트가 많아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다.
 
챌린지 대학 등 실용적인 연구 중심 대학이 늘고 있다. 사진은 인류 최초 중력파 관측 뉴스를 보고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학생들의 모습. 사진/뉴시스·AP
 
정체된 대학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
 
오늘날의 대학 교육은 정형화된 형태로 학생들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지적 능력을 억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크리에이팅 이노베이터스(Creating Innovators)'의 저자 토니 와그너는 대학 교육이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4년제 학위를 방금 딴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문제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대학수학평가(CLA)를 실시했는데 36%의 학생이 기준 미달 점수를 기록했다는 연구를 인용하며 전형적인 대학 교육의 질적 저하를 문제 삼았다.
 
대학은 변화하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대학 진학 욕구가 높아지면서 대학들을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 모두 비슷비슷한 4년제 학위과정을 개설한 채 매년 동일한 학사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진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대학은 불평하는 학생들이 졸업하고 떠나기만 기다리고, 학계는 침묵 중이며, 정부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 교육 방식에 근거해 대학 순위를 매기는 방법 등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교육의 소비 주체인 학생들 또한 대학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이 계속되고 대학원 진학이 보편화되면서, 대학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 학생들은 더 이상 교수 한 명이 수백 명의 학생 앞에서 진행하는 대형 강의에 만족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그비(Zogby)가 지난해 2만7000명의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6%가 대학이 기업가적인 환경을 구축할 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외부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학 교육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신입직원 교육에 나선 기업들
 
기업들 역시 대학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한 로비그룹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의 절반은 대학 졸업생들이 회사에 들어올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답했다. 미국대학협회는 작년 보고서에서 대학 졸업생들이 실용적인 지식은 물론 비판적 사고력과 소통 능력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론 중심의 대학 교육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자체적으로 교육과정을 제작해 신입사원들을 교육시키는 기업도 여럿 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대학'을 설립하고 직원들에게 음식점 경영학을 가르친 지 오래다. 현재까지 8만명 이상의 직원 및 관리자가 이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설팅회사 맥킨지도 '맥킨지 아카데미'를 설립해 기업들에게 신입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올해 160명의 대학졸업자를 채용할 예정인데, 그들에게 '졸업자 제도(graduate scheme)'이라는 1년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실질적인 업무를 가르치며 전문 조직의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통합적 주제 관해 실용적 연구 결과 도출
 
사회적 환경과 기업의 요구를 반영하며 챌린지 대학 혹은 새로운 형식의 대학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니드햄에 위치한 올린공과대학(Olin)은 그 중 하나다. 4년제 학사 과정동안 학생들은 20~25개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80%는 팀워크로 진행된다.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아이디어를 통합하고 협업한다. 공과대학이지만 생물학과 역사학이 결합한 '세계를 바꾼 미생물 6종'이라는 강의도 개설돼 있다. 리처드 밀러 올린대 총장은 이러한 통합교과적인 팀 프로젝트로 학생들이 소통 능력을 연마하고 이해력을 향상시킨다고 말했다. 2002년에 처음 실시된 이래 인도, 싱가포르 등 전 세계 45개국에서 658개의 대학이 방문해 관련 정보를 얻어가기도 했다.
 
2017년에는 영국에서 '기술과 공학의 새로운 모델(NIMTE)'이라는 대학이 문을 열 예정이다. 영국 최초의 비영리 사립대학으로, 교수진은 논문 발표 실적보다는 교수법과 전문지식을 기준으로 선별, 채용된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미리 듣지 않은 학생도 입학할 수 있지만, 재학 기간동안 사회과학이나 예술학은 수강해야 한다. 수업은 20~30명의 소규모 학생들로 구성되며, 학생들은 매일 최소 3시간 반 동안 교수와 대면할 시간을 가진다.
 
핀란드의 헬싱키 외곽에 위치한 알토 대학의 '디자인 팩토리'는 스탠포드 대학의 디스쿨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설립됐다. 디스쿨은 독창적인 디자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공학과 예술, 경영학 학생들을 모아 산업 제품을 만드는 교육을 실시하는데, 프로그램 창립자인 칼레비 에크만 교수는 "이론과 실제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디자인 교육 방식은 9개의 국가로 전파됐다.
 
새로운 대학들은 IT 기술 활용에 적극적이다.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방식을 활용해 수업 내용의 기본은 온라인 강좌를 통해 미리 익히고 실제 강의는 실습 위주로 이루어진다. 2013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대학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프리몬트에 분교를 열었다. 학생들은 컴퓨터 게임처럼 자신의 레벨에 맞춰 설정된 커리큘럼을 따르는데, 입학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은 없고 단지 컴퓨터 코딩 테스트를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
 
챌린지 대학은 연구 성과를 기업과 공유한다. 디자인 팩토리 학생들은 에어버스나 필립스와 같은 대기업 제품을 만든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스타트업 사우나'라는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을 거쳐 상품화된다. 디지털 미디어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하이퍼 아일랜드(Hyper Island)라는 대학은 영국, 싱가포르, 스웨덴 등에 분교가 있는데, IBM과 디자인컨설팅회사 IDEO 등에서 전문가들이 파견돼 석사학위 과정을 감수한다. 학생들은 구글이나 소니, 사치앤드사치와 같은 대기업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난해에는 맨체스터 축구클럽의 대표 이모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교육비 높고 기초학문 간과될 우려도
 
이코노미스트는 챌린지 대학의 단점으로 교육비가 높다는 점을 들었다. 학생과 교수의 비율이 낮고, 실습이 많아 비용이 많이 든다. 프랭클린 올린 재단에서 4억6000만달러를 들여 세운 올린대학은 8년간 등록금을 면제했다가 경제적인 압박에 못 이겨 2010년부터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높은 비용 때문에 소규모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챌린지 대학들은 주로 학생이 1000명을 넘지 않는다. 또한 일각에서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 물리학 등 기초 학문을 학습할 기회를 없앤다고 비판한다. 평범한 학생들보다는 전통적인 수업과 맞지 않는 소수의 학생에게만 어울리는 교육 방식이라는 견해도 있다.
 
신지선 국제경제분석가·미국공인회계사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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