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들을 강제로 데리고 가 노역을 시킨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은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한다는 판결이 또 나왔다. 재판부는 미쓰비시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적극 동참해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분명히 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7부(재판장 최기상)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14명(모두 사망)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1억원씩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미쓰비시는 1인당 9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경기 평택군에 살고 있던 홍씨(1923년생·지난해 사망) 등은 1944년 8~9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히로시마에 있는 미쓰비시 군수공장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홍씨 등은 철광석을 분쇄해 용광로에 넣는 작업, 철괴를 해머로 자르는 작업 등 하루 10시간씩 고된 노동을 했다. 한 달에 쉬는 날은 이틀에 불과했다. 숙소 주변에는 철조망이 둘러싸고 있었다. 국내에 있는 가족과의 연락도 검열로 내용이 제한됐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미쓰비시 기계 등이 파괴돼 작업이 중단됐다. 하지만 홍씨 등도 피폭으로 피해를 입었다.
홍씨 등은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해 전쟁이 끝나고, 해방 후 국내로 돌아왔지만 호흡 곤란·피부질환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피해자들은 2013년 7월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가 홍씨 등에 대해 강제연행·강제노동·강요행위를 한 것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에 적극 동참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자폭탄 투하 뒤에도 미쓰비시는 홍씨 등을 구호하지 않고 사실상 고용관계에 있는 홍씨 등에 대해 안전·배려의무를 방기했다”면서 “정신적 고통해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미쓰비시는 재판에서 홍씨 등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고, 한-일 간 청구권협정으로 소멸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본판결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식민지배는 불법 강점이고, 이로 인한 법률관계 중 한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효력이 배제된다”고 했다.
청구권협정 문제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홍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지법에서도 미쓰비시에 강제연행된 생존피해자 6명이 제기한 소송이 진행됐고 파기환송심 끝에 피해자들이 일부 승소했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서울중앙지법에는 홍씨 등 사건 이외에 4건이 더 있다.
서울법원청사. 사진/뉴스토마토 DB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