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국내 항공산업이 지난해 연간 수송여객 1억명을 돌파하며 모처럼만에 날아올랐다. 올 들어 사드 여파에 따른 유커의 급감은 분명 악재지만, 중장기 성장 흐름을 되돌릴 정도는 아니라는 낙관도 무게감을 더한다. 이에 각 항공사들은 앞 다퉈 인력 및 기단 확대 등 규모의 경제 실현에 나서고 있다. 항공기의 꽃으로 불리는 스튜어디스와 달리 항공 정비 분야는 여전히 남성 전유물이다.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여성 정비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정비인력의 10% 미만에 불과하다. 정비업종이 ‘남성 직업’이라는 선입견이 강한 데다, 여성인력 육성을 책임질 인프라 역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척박한 토양에서 이스타항공이 국내 저가항공사(LCC) 최초로 여성 확인정비사를 배출하며 관심을 끌었다. 홍진 정비사는 국내 LCC 최초 여성 확인정비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거친 남성들에 당찬 도전장을 내민 그의 겁 없는 정비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국내 LCC 최초의 여성 확인정비사인 홍진 이스타항공 정비사는 경영학과 졸업 후 금융계열사에 근무하다 항공정비업계에 뛰어든 이색적인 이력의 소유자다. 사진/이스타항공
확인정비사란 무엇이며, 다른 항공 정비사와 어떻게 다른가.
확인정비사는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한 후 지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에 대해 확인하고 책임지는 정비사다. 항공기가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항공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객실에서는 사무장, 운항에서는 기장의 역할과 같다. 비확인정비사로서의 근무 경력과 해당 항공기에 대한 기종한정 자격을 갖춰야 한다. 공장정비사 또는 객실정비사와는 별개로 현장에서 정비하는 정비사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이다.
정비사 업무의 매력은. 또 힘든 부분이 있다면.
정비는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지 않다. 같은 반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그 팀웍으로 결함을 해소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또 같은 일을 반복함으로써 선임자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나만의 해법을 발굴하는 등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에 쫓기거나 궂은 날씨는 작업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비나 눈이 오는 상황에서 현장 정비를 할 때는 우산을 쓸 수 없어 우의를 입고 정비를 하고, 한 겨울에는 손이 얼 때도 있다. 그래도 일이 재미있으면 모든 고통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정비사는 '남성 직업'이라는 인식이 짙다. 항공정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타사에도 여성 정비사는 많이 있지만, LCC 여성 정비사로는 첫 입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비행기를 받고 띄우는 현장정비사는 남성 전유물과 같았다. 여자 현장정비사라는 선례가 없어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것 같다. 최근에는 많은 여성들이 성별과는 무관하게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지만 부서의 상부에서 진두지휘를 하는 인력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내 경우엔 경영학을 전공했고 금융계열사로 입사했다. 하지만 적성에 어울리지 않았는지, 단조로운 사무직 일은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함과 동시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갖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현재 타 항공사 운항 승무원으로 재직 중인 남동생의 조언으로 항공정비사에 대한 정보를 얻고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주변의 격려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2년에 걸쳐 정비사 면장을 취득했고, 지금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 현장에서의 일은 적성과 잘 맞고 성취감도 높아 현재 즐겁게 일하고 있다.
특이 이력을 가졌다.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당시 회사생활과 전혀 다른 계열의 학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정비사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국토교통부에서 인정하는 항공정비사 과정 이수를 위해 1년6개월 동안 학과 과정 및 실습을 병행했다. 이수 후 필기 및 실기 시험을 보고 항공정비사 면장을 취득했다. 그 결과 이스타항공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생소한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용어 등 낯선 부분이 많아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에게 물어가며 이해도를 높여 나갔다. 만 2년 만에 타 업종 정규직으로 입사한 것은 주변의 많은 도움과 운이 많이 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비사가 된 이후에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정비 매뉴얼 같은 경우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새로운 결함 해소 방법이나 좀 더 안전한 운항을 위해 업무 수행부분에 있어 개인적인 학습도 필요하다. 때문에 휴일이나 차량 이동시 태블릿PC의 메뉴얼을 활용한다. 메커니즘적인 부분에 대한 학문적 궁금증 해소를 위해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선배 정비사들이 체력관리를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아직까지 그럴 만한 여유는 없다. 일단은 휴식시간 잘 먹고 잘 자는 것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해서 체력 유지를 해보려 하지만, 생각처럼 실천이 쉽지는 않다.
홍진 확인정비사(오른쪽)가 동료 정비사와 함께 항공기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이스타항공
국내 항공정비사 중 여성의 비율이 많지 않다. 여성 정비사로서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사무실에서 내근하고 있는 여성 정비사까지 포함하면 생각보다 인원이 많지만, 현장에서 비행기에 직접적인 정비를 하는 여성 정비사는 이스타항공의 경우 4명(본인 포함)이다. 그나마 다른 항공사에 비해 많은 편이다. 항공기 정비는 대부분 해당되는 장비를 이용하기 때문에 여성이라고 해서 불편한 점은 크게 없다. 오히려 이스타항공의 주력 기종인 737기 특성상 좀 더 세밀하고 한정된 공간 내 작업에 있어서는 편리한 부분도 있다. 또 정비사가 알아서 결함을 찾아내서 정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운항 및 객실 승무원들이 직접 비행기에 탑승 후에 느낀 기내 불편사항을 전달해주는데, 아무래도 좀 더 편하게 전달해주는 면이 있다. 간혹 여자 정비사가 생소한 분들이 기판 또는 케이터링 직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국내 여성 항공정비 인력이 적은 이유로 부족한 인프라와 육성 환경이 꼽힌다. 여성 정비 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여성 육성 환경 개선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여성의 경우 협소한 항공기 내부 공간에서 작업하는데 유리하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여성 정비 인력의 선례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급격히 성장 중인 항공 시장 확대에 맞춰 정비인력의 양성은 물론, 여성 정비인력도 지속적으로 육성해 나갈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공정비사를 꿈꾸는 예비 정비사들 또는 확인정비사를 꿈꾸는 정비사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항공 정비사라는 직업은 힘들지만 굉장히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업무의 특성상 주간과 야간을 오가기 때문에 시차 적응 등 체력적 어려움도 뒤따른다. 육체적 작업이 적지 않은 업무인 만큼 꾸준한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정비본부라고 해서 직접적인 항공기 정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업무, 예산, 기술, 통제 등 담당업무에 따라 항공기에서 직접적으로 일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도움을 주는 정비사들도 존재한다. 정비사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관련 학과를 졸업하는 것과 따로 교육원을 통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결국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