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최근 들쭉날쭉한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미국 셰일 생산 축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가 안정을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감산카드 효과가 희석되면서 초조함이 커졌다.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모하메드 바킨도 OPEC 사무총장은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에너지포럼을 통해 "미국 셰일업계가 전세계 원유 공급을 축소하고자 하는 산유국들의 계획에 협력하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말했다.
국제유가 회복을 위해 OPEC을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이 수급 조절에 나선 만큼 미국 셰일업계에 견제 차원의 책임분담을 요구한 것이다. OPEC 회원국을 비롯해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은 올 들어 연이은 생산 감축으로 하루 약 180만배럴의 감산 결정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 내 생산량은 약 10% 증가했다.
지난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5대 석유 생산 및 수출국이 모여 국제 석유가격 조정 및 회원국 간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구성된 OPEC은 현재 14개 회원국은 물론, 비회원 산유국과 함께 감산 합의 등의 수급 조절을 통해 영향력을 미쳐왔다. 특히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OPEC이 국제유가에 미쳐온 영향력은 절대적인 수준이었다.
10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 WTI가격이 전일 대비 2.7% 오른 배럴당 50.92달러로 마감한 이유 역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수출량을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다음달 시장 요구치 대비 56만배럴 적은 1일 715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유가 조절 단골카드로 꼽아온 감산 합의 효과가 나날이 낮아지며 위기론이 짙어진 OPEC이 미국 셰일업계에 협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OPEC 총회 당시 전경. 사진/AP뉴시스
다만, OPEC의 입지는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의 영향력이 나날이 강화되고 있는 탓이다. 미국 셰일업계는 앞서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시추에 나서며 OPEC의 대항마로 떠올랐지만 거센 견제와 높은 초기 투자비용에 줄줄이 문을 닫으며 사실상 패배했다.
하지만 최근 생산원가를 크게 낮추는 데 성공하며 재차 위협적인 존재로 급부상했다. 그러면서 OPEC의 감산 합의 및 연장 조짐 역시 유가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급 조절을 통해 지난 6월 배럴당 4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던 유가를 50달러 수준까지 끌어올렸지만, 올해 목표치인 60달러 달성은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감산 효과가 미미해짐에 따라 내부 갈등도 불거지면서, 감산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회원국도 늘어나는 등 'OPEC 무능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에 미국 셰일업계를 압박, 협력을 촉구하고 나선 것.
하지만 미국 셰일업계가 이에 동조할지는 미지수다. 산유국 견제에 쓴맛을 봤던 2000년대 후반에 비해 기술 발전을 통한 원가절감 및 산유량 증가에 성공하며 영향력을 크게 키웠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은 셰일업체들의 수익성과도 연결되지만 OPEC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킨다면 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셰일업체들이 OPEC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 이익 창출을 도모할 것인지, 중장기적 치킨게임을 통해 주도권을 잡을 것인지의 문제"라며 "다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정부가 셰일붐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는 만큼 OPEC에 협조할 것이란 전망은 다소 약해졌다"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