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24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시장 안 대신소방서 입구 200m쯤 떨어진 거리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김상기(78세) 할아버지는 깊게 주름 팬 얼굴로 “이제 한국당을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그렇게 못할 줄이야…홍준표도 싫어.” 김 할아버지는 단호했다.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가 24일 서문시장에서 상인 김상기(78세)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정말 달라진 것 같았다. 서문시장 입구로 들어서는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에게 백발의 주근일(71세)씨는 “어이, 임대윤. 이겨야 하는데”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보석상 고모(50대 여성)씨와 김모(49세·여성)씨도 “꼭 이겨야 하는데” 했다. “뽑아드릴께. 근혜만 나오게 좀 해주이소.” 이 말을 듣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가 24일 서문시장 식당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의 등록 신청 접수증. 사진/최서윤 기자
서구 국채보상로 34길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건물 4층에는 8시40분 무렵부터 기자들이 30명쯤 몰렸다. 비례대표, 광역단체장, 교육감 선거 후보자 등록을 받는 첫날이다. 오전 9시 11분경 한국당 권영진 후보가 입장했다. 13분 뒤 임 후보가 도착해 권 후보와 악수했다. 1, 2위를 다투는 여야 후보의 만남에 기자들은 연신 카메라 셔텨를 눌러댔다. 임 후보가 우선 후보자토론회 신청서와 대담·토론회 영상 촬영 동의서, 후보자 5대 공약 제출일 공개승낙서에 서명하자 한 직원이 다가와 “제가 동구 살아서”하며 악수를 청한다. 동구청장을 2차례 역임한 임 후보에게 이날 가는 곳마다 ‘동구청장’이라며 다가온 많은 시민 중 첫 번째였다.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와 자유한국당 권영진 후보가 24일 오전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후보등록을 마친 임 후보는 바리톤 중저음에 울림통이 큰 목소리로 “고교 시절 성악을 권유 받기도 했지만 정치하고 싶어 안 했다”고 말했다. 또 "학부 전공은 법학이고 석사는 외교학이지만 고시는 원서조차 안 썼다. 박정희 정권 부속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순진했다”고 했다. 무슨 신념으로 평생 정치에 매달렸나 물었다. “사람은 함께 사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사람들 도와보려고 소록도 나환자촌을 방문하고 봉사도 많이 했다. 그런데 시스템이 바뀌어야 되겠더라”고 그가 말했다. “소록도에 경찰들이 칼빈 소총 들고 경비 섰다. 일제부터 내려온 인권유린이 계속되던 때였다”면서 정치의 꿈을 키우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은 못했네요.” 아쉬운 듯 말을 덧붙인 임 후보는 14·15·17·19대에 걸쳐 네 차례나 동구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모두 낙선했다. 그는 “첫 선거를 동구에서 시작했고 동구청장도 해서 동구에 남았다”고 했다. 그를 처음 동구로 데려다 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해소·대구 개혁’이 목표였다. 경기 군포에서 국회 입성 후 대구로 돌아와 재선한 김부겸 장관처럼 지역구를 옮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에 그는 “이상주의자라 그런 유연함이 부족했다”며 웃는다.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가 24일 신암선열공원에서 잔디를 청소하던 시민들과 함께 사진 찍는 모습. 사진/최서윤 기자
이상주의적 면모는 외증조부를 닮은 듯했다. 임 후보는 후보자 등록 직후 신암선열공원에 묻힌 외증조부 묘소로 향했다. 3·1운동이 있던 해인 1919년 영해읍에서 3·18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세영 조사였다. 임 후보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공부하던 중 ‘통일국시론’이라는 원고를 써 이름을 알렸다.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 돼야 한다’는 상식이 당연하지 않던 86년 군부정권기의 일이다. 석사 논문은 ‘미군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을 썼다고 했다. 베트남전을 아시아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으로 보는 관점은 촘스키 주장을 비롯해 요즘엔 거의 정론 아니냐고 하자 임 후보는 “당시 한국에서는 신선한 주장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그의 이상은 직전 시장인 한국당 권 후보를 근소 차로 뒤쫓는 지지율의 동력이 됐다. 임 후보는 “젊은 시절 통일이 국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한국정치가 분단으로 왜곡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남북화해 기조로 이제 대구정치가 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선거사무소 인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동성로에는 ‘통일국시’라는 국수가게가 문을 열었다. 멸치국수인 통일국시와 통일만두, 평양냉면을 ‘38선이 무너지는 그날까지 3800원만 받겠다’고 적힌 현수막이 외벽에 걸려 있었다.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통일국시' 가게의 24일 모습.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가 86년 작성한 '통일국시론'에서 아이디를 얻었다고 한다. 사진/최서윤 기자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통일국시' 가게의 24일 모습.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가 86년 작성한 '통일국시론'에서 아이디를 얻었다고 한다. 사진/최서윤 기자
그러나 결코 이상에 머물러선 안 되는 과제가 남았다. 이날 만난 대구 시민들은 유독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대전과 충남, 울산과 부산을 취재했지만 “경제 좀 살려달라”는 직접적인 주문을 가장 많이 들은 건 대구에서였다. 임 후보는 “현재 자동차 부품 산업을 전기차 부품 산업으로 고도화하려 한다. 거의 유일한 물류 수송로인 공항을 절대 이전시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1인 가구도 먹고 살게 좀 해달라” “너무 어렵다”는 시민의 외침은 보다 역동적인 경제발전을 요구하고 있었다.
임대윤 후보 약력 ▲1957년 대구 출생 ▲영남대 법학과 졸업 ▲민선 2·3기 대구 동구 구청장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 ▲민주당 최고위원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