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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윤봉길과 루신의 대화
입력 : 2019-04-22 오전 6:00:00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일이다. 1919년 임시정부가 설립되었으니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다. 이날을 기념하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상해에서 ‘1919년 동아시아 대전환을 꿈꾸다’라는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3.1운동에 대해 새로운 성격규정을 시도했다. 그간 3.1운동은 조선인의 항일만세운동이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세미나에 참여한 학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3.1운동의 민주공화제적 특징, 국제적 특징, 평화적 성격을 집중 분석했다.
 
첫째, 3.1운동은 단순히 일본에 반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왕정복고가 아닌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점, 그 정신은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 선언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둘째,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운동인 샤티야그라하운동(진리관철운동)을 비교하면서 3.1운동이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운동이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셋째, 3.1운동의 평화론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검토하면서 평화운동으로서 3.1운동이 재정의되었다. 
 
모두 새롭고 참신한 접근이었다. 3.1운동의 성격을 정치철학적, 국제적, 보편적 측면에서 정확히 규정한 것이었다. 항일만세운동에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와 함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는 투쟁이 3.1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날 국제세미나가 3.1운동의 성격을 학문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이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루쉰공원이었다. 루쉰공원의 과거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홍커우공원이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왕생일기념식과 상하이 점령전승기념행사에 폭탄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중국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죽었다. 그 때 윤봉길의 나이는 25살. 이 의거를 두고 중국의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하다니”라며 찬탄했다. 홍커우공원은 이후 중국의 유명한 문인 루쉰이 묻히고 루쉰공원으로 불린다. 이렇게 루쉰공원에는 윤봉길과 루쉰이라는 조선과 중국 항일운동의 걸출한 두 영웅이 평화롭게 같이 쉬고 있다. 항일운동의 국제적 성격, 민주공화적 성격, 평화적 성격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루쉰은 반봉건투쟁, 반제국주의투쟁의 화신이었다. 그에 관한 일화는 수 없이 많다. 그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일본인에 의해 처형당하는 중국인을 중국인들이 만세를 외치며보는 슬라이드를 보고 썩어빠진 봉건사상과 투쟁하기로 결심한 것은 워낙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그는 원나라 곽거경이 쓴 ‘이십사효’라는 책에서 가난한 곽거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땅에 묻으려고 했다는 고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 나는 효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되었고 혹시 아버지가 효자가 되려는 것이 아닌가 가슴을 졸였다.” 반봉건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 그는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에서 “물에 빠진 개는 건져올리지 말고 계속 패야 한다”고 했다. 조그마한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봉건세력에 대한 투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셋째,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나의 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에게 (나를) 얼마든지 증오하게 하라. 나도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도 타협은 없었다. 
 
고 이영희 선생이 존경했다는 루쉰은 동아시아에서 반봉건, 반제국주의투쟁의 선봉으로 많은 이의 존경을 받고 있다. 윤봉길도 홍커우공원 의거로 중국과 한국의 존경과 찬탄을 받고 있다. 이들이 꿈꾼 것은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전쟁이 아닌 상호 평등한 국가들 사이의 평화였다. 왕이 없는, 압제가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이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만일 윤봉길과 루쉰이 만났더라면 이들은 밤을 새워 반봉건,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국제주의, 평화주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사라진 평화로운 동양 삼국을 그렸을 것이다. 나아가 동양 삼국의 평화를 바탕으로 세계 평화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남북한의 비핵화와 평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평화롭고 자유로운 관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가상적이지만 윤봉길과 루쉰의 대화를 생각해 본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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