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 이웃 동네 한 치킨집에서 마주한 A검사가 이렇게 푸념했다. 지인 소개로 어느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그와 나는 서로 안 지 벌써 7년이 다 되어간다. 불편하고 답답한 것은 둘 다 싫은지라 우리는 이심전심 '절대 현안'인 '검·경 수사권조정안'을 안주로 올리지 않았다. 어쩌다 나온 영화 이야기만 주야장천 했다. 그러나 끝내 피하기는 어려웠다. 푸념 뒤 말을 이어가는 A검사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잡는 건 형사가 하고 기소는 검사가 하고 판결은 판사가 하는 거야."
A검사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한 눈에 봐도 많이 취했다. 매우 생경했다. 꼭 소도둑 처럼 생긴 A검사는 초임 때만 해도 술을 곧잘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이 나빠져 몇년 전부터 사실상 금주 중이다. 일상적인 야근과 스트레스가 병이 됐다. 자기 입으로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그는,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있든지 오전 7시까지 출근한다. 일찍 퇴근해야 오후 9~10시다. 일이 많기도 하지만 그정도로 공을 들인다. 재작년부터는 형사분야 공인전문검사 인증 시험 통과를 위해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A검사는 "특수부 검사들과의 경쟁해서 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서울 모 지역 형사부 검사다.
A검사의 ‘치킨집 일갈’은 술자리에서 잠시 화제가 된 1999년작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의 극중 대사와 비슷했다. '우 형사'역을 맡은 박중훈씨가 영화에서 한 원래 대사는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다.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서부서 강력반 우영구’를 한번에 특정시킨 말이다. A검사도 수사권 조정에 앞서 검찰과 경찰이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서로 하는 일이 분명히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탄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은 물론 경찰의 정체성마저 무너뜨리는 것이다. 소박한 지식으로도 헌법을 비롯한 우리나라 법체계가 대륙법을 계수한 것임을 안다. 처음부터 우리 법체계는 사법경찰과 검사, 판사의 임무를 엄격히 구분했다. 균형과 견제라는 거푸집에서 처음부터 생긴 틀이 그렇다. 영미법 체계를 접목시킨 조정안에 담긴 '경찰의 1차수사 종결권'은 그 틀을 깨고 있다. 정부는 ‘설령 경찰이 부실수사로 1차수사를 종결해도 검찰이 60일간 사건기록을 볼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당사자들을 불러 '직접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더 어불성설인 것은, 조정안에서 경찰로 부여하는 검찰 권한 대부분이 형사부·강력(마약)부 권한이라는 사실이다. 정작 공안·특수수사는 그대로 검찰에게 쥐어줬다. 역사적으로 이른바 ‘정치 검사’들은 대부분 공안·특수 출신이다. ‘정치 검사’ 잡겠다는 정부 조정안은 애먼 검사들을 겨누고 있다. 검찰의 권력남용 역사와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 실험 목적의 시도로까지 보인다.
손에 피묻혀 가며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형사부·강력(마약)부 검사들이 검찰 내부게시판에서 정부 조정안을 성토할 때 ‘공안·특수부 엘리트 검사’들은 짐짓 잠자코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집단은 또 있다. 변호사들이다. 정부 조정안이 확정되면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변호사들이다. 피의자가 1차 수사 종결권을 가진 경찰을 방어하려면 수사단계서부터 변호사가 필요하다. 변호사들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새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들은 지금 그래서 침묵하고 있다.
정부 조정안은 고급인력을 대량으로 사장시킬 우려도 있다. A검사가 되고 싶어 하는 공인전문검사는 2013년에 도입됐다. 공안·특수만 대우 받는 검찰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다. 이미 6년이 흘러 누적인원과 노하우가 상당하다. 지난 3월 기준으로 현직 공인전문검사는 총 170여명이다. 형사·강력사건 수사권을 경찰로 모두 보낸다면 그 분야 공인전문검사들은 하루아침에 설 곳을 잃는다. 형사·강력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들도 상당수다. 그 손실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금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곧 검찰개혁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아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수사권 조정의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국민이 떠 안게 된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슨 권력개혁이고 검찰개혁이란 말인가. 알면서도 그리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곡학아세의 무리들이다. 검찰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왔더라도 맹목적으로 난도질을 해서는 안 된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지금 정부는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대수술을 준비 중이다. 그 수술대 위에는 검·경이 아니라 국민이 누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