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결혼을 지속하지 못한다."
최근 아내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 1심에서 패소한 영화감독 홍상수씨의 주장이다. 유책주의를 지지하는 우리나라 법원은 홍 감독의 주장을 일거에 배척했다. 판결이유야 어떻든 혼인 중에 스물 두살 어린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더 이상 지금의 혼인을 유지할 수 없다는 홍 감독의 주장은 아직 우리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예고된 수순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책주의니, 파탄주의니 하는 어려운 법률용어를 걷어내고 보면 홍 감독의 항변은 차라리 솔직담백하다. 우리나라 이혼 남녀가 제시하는 가장 많은 이혼 이유는 '성격차이'다. 그러나 속 사정을 듣고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배우자 일방의 외도나 폭력, 부양의무·부부생활의 정당한 이유 없는 거부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처가와 시가의 자존심 대립에서 원치 않게 갈라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통계상 이혼 이유인 '성격차이'는 그만큼 헤아릴 수 없는 사연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격차이'가 짐짓 이혼의 최고 사유로 남아 있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소복소복 쌓여 온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처받은 남녀가 사는 집 문턱을 넘어들어가 이불을 걷어내는 것을 차마 하지 않는, 이웃과 친구로서의 최소한 배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이유로 이혼을 하는 부부도 '성격차이'라는 범 대중적이고 고상하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성격차이'라는 이별의 논거를 애용할 수 있어왔다. 이혼의 직접적 사유가 비록 '추한 자존심'때문일지라도 말이다.
2000년대 손꼽히는 '꿈의 결혼'을 했던 송혜교·송중기 부부가 이혼조정 절차를 밟고 있는 사실이 27일 공식 확인됐다. '단독'·'속보'기사가 쏟아지고 송중기씨 측 대리인이 이를 공식화하자 여론이 금세 들끓었다. 전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의 영빈관 '승지원'에서 독대하고 밀담을 나눴다는 소식도, 자유한국당 '엉덩이 춤' 논란도, 기록 갱신을 향해 달려가는 국회 파행도 봄날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그야말로 여론이 한방에 정리된 것이다. 이 정도면 '음모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는 '지라시'가 있었다. 그 근본 없는 '워딩'은 이미 갈라서기로 한 '송송 부부'를 사람 많은 대로변에 세워놓고 갖은 구경거리를 만들었다. 별안간 송중기씨의 절친한 친구이자 송혜교씨와도 잘 아는 배우 박보검씨도 '불륜남'이 되어 그 광장에 끌려나왔다. 이별에 합의한 '송송 부부' 당사자의 오랜 고민과 상처는 안중에 없었다. 불과 반나절만에 '송송부부'의 이혼 사유는 '불륜'으로 확정판결이 나 있었다. 급기야 당사자 측이 이런 야차같은 '지라시 유포자'와 추측성 보도를 쏟아낸 일부 언론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선포했지만 폭주를 막지는 못한 듯 싶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20세기 초 세기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한 헐리우드 여배우와 재벌의 이혼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짧게 만나 결혼한 뒤 수일만에 이혼한 그들이 기자회견에서 밝인 결혼과 결별 이유는 "그때는 사랑했었기에"였다. '태양의 후예'를 한번이라도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이라면, '송송부부'를 그대로 둬야 한다. 그들의 이혼 이유는 '성격차이'일 것이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의 품위를 서로 세워주는, 이웃과 친구로서의 최소한 배려이자 체면이다.
최기철 사회부장(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