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가운데에는 약 3만㎡에 달하는 공터가 있다.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지역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이 곳은 1940년대부터 공원 부지로 계획됐다. 이 땅은 일본군과 미군이 연이어 사용하면서 실행되지 못한 채 계획으로만 남겨졌고, 그 사이 소유권은 민간으로 넘어갔다.
서울광장 두 배 크기도 넘는 이 부지는 자칫하면 내달 1일부터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과 함께 공원에서 해제돼 주변 땅과 마찬가지로 고급 주택가로 바뀔 공산이었다. 이를 뒤늦게 안 지역주민들은 작년부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주민들은 용산시민연대, 서울환경운동연합 등과 함께 한남공원지키기시민모임을 만들었고 3000억원에 달하는 부지 매입비 때문에 애를 먹던 서울시와 용산구를 설득했다.
결국, 시민모임은 서울시를 움직였고 전액 서울시가 부담해 부지를 매입해 80년째 말뿐인 공원이 아닌 진짜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둔 만큼 실시계획 인가를 거쳐 5~7년까지 공원 실효를 유예해 보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일부 청년임대주택을 짓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미래세대를 위해 녹지 확보가 더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공원 일몰제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사유재산 보호다. 제도 도입의 초석이 된 1999년 헌재 위헌 판결을 살펴보면 나대지 상태로 장기미집행된 공원 부지를 지정 해제 이외에도 금전 보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위헌 판결 이후 이를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나대지 이외에 모든 사유지, 거기에다 국공유지까지 포함해 20년 이상 지날 경우 지정 해제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도입됐다.
여기서 우선 단추가 잘못 맞춰졌다. 국가가 지나치게 개인의 토지를 장기간 묶어둘 경우 이를 보상 혹은 원상복구하는 구제방법이야 탓할 일이 아니다. 단, 헌법에 따라 사회적 가치가 상당 수준 인정될 경우 정당한 법과 제도로 토지주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 국가가 토지주에 해당하는 국공유지, 그리고 헌재가 위헌을 인정하지 않은 나대지 이외의 사유지까지 일몰제에 포함해야 하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20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한남공원이 80년만에 보상계획이 잡힌 것처럼 돈 없는 지자체 예산만으로 공원 조성에 속도를 내라는 것은 그나마 서울시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다. 중앙정부가 공원 조성 예산의 7~8할인 보상비 지원에 뒷짐진 채 지방정부에만 맡겨놓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못한 것 아니냐’, ‘20년 지났으니 땡’이라는 식의 논리로는 어떤 공공사업도 불가능하다.
해외 다른 국가들은 녹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국은 아예 국가에서 큰 틀의 가이드라인과 재정적 지원을 맡아 각 지자체에서 그린 인프라를 조성한다. 도시 전체를 공원화하겠다는 런던은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도시계획시설상 공원뿐만 아니라 공공 또는 민간 소유의 녹지공간 모두를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인구 감소, 도시구조 변화, 재난 대처의 해법으로 공원이 가진 사회적 가치에 주목해 시가지 녹지비율을 30% 이상 확보하도록 하고 지자체의 공원 조성·관리 비용을 최대 절반까지 지원하고 있다. 요코하마에선 연간 900엔의 녹지세를 부과해 재원을 마련하고 토지주에게는 상속세를 감면해 주며 녹지를 보전하고 있다.
요즘 집 근처에서 공원을 접할 수 있는 지역을 ‘공세권’, ‘팍세권’이라고 하며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도심 속에서 녹지를 접할 수 있는 것의 중요성이 시장적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미세먼지 저감, 산책 등 삶의 질 향상, 정서적 효과 등 사회적 가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테다. 집 가까이 공원이 있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공원 비율이나 면적을 채우기 위해 아파트 지을테니 생색내기로 공원 조금 만드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 하루 아침에 과잉입법된 제도를 핑계로 공원 부지를 다 없앨 일이 아니라, 도시와 국가에 어느 정도의 공원이 필요하고 이를 무슨 돈으로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공원을 없앨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