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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승리호’ 김태리 “그 분이 저로 태어나고 싶대요?”
“국내 첫 SF영화…‘최초’ ‘첫 번째’ 타이틀이 주는 설렘 매력적”
“‘승리호’ 장선장, 신념 따라 삶 설계…‘1987’ 연희와 비슷했다”
2021-02-22 00:00:01 2021-02-22 09:37:1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꽤 뜬금 없기는 했었다. ‘선장이란다. 그것도 전직 해적단 출신 선장이다. 그럼 수염 좀 덥수룩하게 나 있고, 덩치도 엄청나며 욕지기를 입에 달고 사는 그런 거친 남자를 상상하게 된다. 근육질 몸매에 키는 190cm이상. 일당백의 싸움 실력까지. 장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활극 스타일이다. ‘뭐 조금 무리가 있을 수는 있겠다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 전체적인 조건에서 조금씩 살을 좀 빼본다. 덥수룩한 수염이 아닌 멋스러운 수염, 엄청난 덩치가 아닌 멋진 근육질 몸매, 욕지기가 아닌 거친 입담 정도. 그런데 그 주인공이 여자라면 도대체 무슨 스타일을 원하는 걸까 싶다. 물론 여자 해적단 선장도 있기는 하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고, 국내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못할 건 없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가냘픈 몸매의 김태리가 그 역을 맡았다니. 이건 좀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국내 최초 우주활극 SF장르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이 바로 김태리표 전직 해적단 출신 선장이란다. 물론 영화를 본 뒤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됐다. 그 선입견을 깨고 섭외를 한 승리호조성희 감독의 눈이 대단했고, 그걸 승낙한 김태리의 배포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배우 김태리. 사진/넷플릭스
 
김태리도 사실 자신에게 들어온 승리호장선장캐릭터에 대한 의구심이 컸단다. 자신의 이미지와 정 반대의 비주얼, 여기에 생각할 수도 없는 색다른 인물을 두고 자신을 생각한 조성희 감독의 속내가 너무 궁금했다고. 물론 김태리가 이런 이유 때문에 승리호출연을 두고 고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최초란 말이 주는 설렘과 행복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국내에서 만들어 진 첫 SF상업영화잖아요. ‘첫 번째’ ‘최초란 단어의 설렘은 정말 놓치고 싶은 앉은 뭔가가 있어요(웃음). 그리고 솔직히 장선장캐릭터에 대한 끌림도 컸죠. 감독님이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원하셨다고 하셨어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고(웃음). 물론 가장 큰 매력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쓰레기 쟁탈전 그리고 거기서 돈을 버는 청소부들. 본적도 없는 얘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재미있다고 달려 들었지만 당연히 촬영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의 장면이 CG로 만들어졌기에 배우들은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해야 했다. 요즘은 상업 영화에서도 꽤 많이 사용되고 낯설지 않은 블루 스크린촬영이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는 배우들은 곤욕스럽다 못해 황당하고, 황당하다 못해 괴상망측할 정도라며 웃는다. 모든 게 끝난 현재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정도라고.
 
배우 김태리. 사진/넷플릭스
 
지금 보면 좀 더 잘 표현할 걸이란 아쉬움 정도는 남죠. 근데 촬영 당시에는 정말 황당해요(웃음). 눈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저흰 상상으로 피하고 마주하고(웃음). 나중에는 유해진 선배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리신 적도 있어요. 선배의 말씀에 속으로 위안이 된 게 나만 헤매고 있는 게 아니구나싶었죠. 그 외에 우주가 배경이라 몸에 착용하는 장비도 엄청 많았어요. 움직이는 것도 진짜 불편했고. 그래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 안에서 숨쉬는 인물 장선장이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살아 숨쉬는 것인지에 따라서 김태리가 느낀 그 재미는 오롯이 관객이 느끼게 된다. 당연히 배우로서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분석하는 것이 첫 번째다. 우주를 배경으로 활동해 온 전직 해적단 출신, 현재는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선장. 참고를 할 만한 레퍼런스는 결코 존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태리를 고심하고 또 고심했단다.
 
“고민 좀 해봤죠(웃음). 뭔가 특이하단 쪽으로만 접근하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냥 너무 평범한 사람 같았어요. 근데 엄청 똑똑한.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그걸 위해 자신이 속한 조직을 박차고 나온. 다른 인물들은 승리호에서 상황과 사건을 겪으며 성장을 하면, 장선장은 이미 성장을 한 상태였고 단 한 가지 일을 위해 오랜 세월을 버티고 버텨 온 인물이에요. 흡사 ‘1987’의 연희 같은 느낌이었어요. 신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영화 '승리호' 스틸. 사진/넷플릭스
 
사실 이런 저런 흥미와 궁금증이 넘쳤지만 승리호를 보고 나면 누구라도 드는 생각은 첫 번째로 상상이다. 한국 영화에서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활극을 만든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놀라움이 정말 상상한 그대로 스크린에 고스란히 구현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 증이다. 세 번째는 구현된 비주얼이 정말 진짜처럼 생생하게 그려내 질 것인지. 출연 배우들도 당연히 궁금해 한 지점이다.
 
“중기 오빠하고도 후시 녹음을 하면서 너 봤냐?’ ‘오빠 봤어요?’하면서 둘이 너무 놀라워 했어요. 하하하. 사실 전 상상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해요(웃음). 그냥 시나리오 읽으면서도 우아우아만 반복했었죠. 저를 포함해 출연 배우 모두가 사실 관객이나 마찬가지에요. 그저 출연을 했을 뿐이지. 저희도 영화 보면서 지금도 놀라요. ‘저게 가능해?’이러면서 본다니까요. 하하하.”
 
첫 번째, 그리고 최초란 타이틀에 큰 매력을 느낀다는 김태리. 그리고 출연 배우이지만 지금도 승리호를 볼 때 마다 감탄을 한다는 그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 낸 조성희 감독의 현장 지휘가 궁금했다. 데뷔 이후 스크린 출연 작품은 몇 작품 없었지만 워낙 굵직한 감독들과 함께 해 왔기에 승리호의 조성희 감독은 김태리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 지가 너무 궁금했다. 김태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배우 김태리. 사진/넷플릭스
 
하하하. 감독님은 뭐랄까. 수줍은 많은 고집쟁이 천재 같은 느낌(웃음). ‘승리호자체가 만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보니 그림으로 설명을 많이 하셨어요. 저랑 처음 만난 미팅에서도 노트 한 권을 가져오셔서 이건 이런 느낌이다’ ‘저건 저런 느낌이다라며 하나하나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중기 오빠랑은 두 번째 작업이지만 저랑은 첫 번째 작업이시고. 그래서인지 되게 고집스럽게 저한테 하신 면도 있어요. 그리고 작업하실 때 되게 합리적이세요. 뭐라 설명이 잘 안 되는데(웃음).”
 
영화 속 악역으로 등장한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아미티지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면 김태리가 되고 싶다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이 발언을 전하자 김태리는 처음 들었단 듯 도대체 이유가 뭐냐며 박장대소를 했다. 영화 속에서도 김태리와 그는 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김태리에 눈에 비친 리처드 아미티지다.
 
하하하. 좀 더 어려지고 싶단 뜻인가(웃음). 그에겐 승리호현장이 말이 통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누구라도 말이 통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의 자세가 다를 텐데. 리처드 같은 경우에 촬영 직전에 집중도가 정말 멋지더라고요. 그리고 영어가 주는 톤의 변화가 정말 생소하게 들렸어요. 영화를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가 정말 엄청났어요. 진짜 할리우드 톱스타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죠.”
 
배우 김태리. 사진/넷플릭스
 
승리호가 공개된 뒤 마니아들에게 꽤 흥미로운 설정으로 보였던 장면의 뒷얘기도 공개했다. 바로 장선장김태리가 영화에서 중국 무협소설 영웅문을 읽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또 일부에선 조성희 감독의 기발한 설정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김태리 입장에선 그냥 감독님이 주신 책이다고 허무하게 웃었다.
 
실제로 감독님이 소장하신 책이에요. 경찰이 들이 닥쳤을 때 다들 뭘 하면 좋겠냐고 하셨죠. 태호(송중기)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 전부 할 일이 있는데 그럼 장선장은? 책을 읽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이 책을 읽어봐라. 하고 주셨어요. 전 읽어 본 적은 없는 책인데. 아마도 대의를 품은 영웅의 삶이 장선장과 닮아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각자가 워낙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라 출연 배우들에게 딱딱 들어 맞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 김태리의 장선장이 아닌 장선장의 김태리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김태리에게 장선장을 제외하고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배역을 하나 꼽아 달라고 물었다. 쉽게 말하면 가장 고생한 캐릭터를 선정해 달란 질문이다.
 
영화 '승리호' 스틸. 사진/넷플릭스
 
업동이요!!!(웃음). 와 진짜 전 절대 못해요. 시나리오에 나온 부분보다 100 200배 이상 해진 선배가 더 만드신 거에요. 진짜 조각조각을 해서 캐릭터에 덧입히고 맞춰 냈어요.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배역이에요. 반대로 해보고 싶다면 타이거 박이요. 요즘 젠더프리인데 제가 해도 어울릴 거 같지 않으세요?(웃음)”
 
P.S 촬영 이후 송중기는 승리호의 실제 조종석 핸들을 기념품으로 조성희 감독에게 받았다. 김태리는 영화 속 장선장의 상징인 선글라스와 가죽 자켓 그리고 스마일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받았단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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