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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비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첫 무죄 확정'
2021-02-25 11:02:30 2021-02-26 17:02:48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의 거부'를 신념으로 한 예비군 훈련 거부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그동안 '종교적 양심'뿐만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도 예비군법과 병역법상 훈련을 거부할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밝혀왔으나 무죄가 확정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예비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기존 전원합의체 판례를 인용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경우 병역법 88조 1항 1호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예비군법과 병역법 관련 조항 역시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고,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도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이라면서 "병역법 88조 1항 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따라 예비군법 15조 9항 1호와 병역법 90조 1항 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를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에 의한 경우라도 그것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 거부에 해당한다면 예비군법과 병역법 상 훈련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A씨가 가진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의 거부 신념'의 형성과정에 주목했다. A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차례에 걸쳐 예비군훈련, 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때문에 고통을 겪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으로, 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이 확고하게 형성됐다.
 
A씨는 군 입대를 거부하기로 결심했지만 입영 직전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신념을 꺾었다. 하지만 신병 훈련과정에서 적에게 총을 쏘는 것이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그후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 관리병에 지원해 군복무를 마쳤다. 
 
A씨는 전역후 자신의 신념을 다시 꺾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예비역 편입 이후 일체의 예비군 훈련을 모두 거부했고, 수사기관의 조사와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모두 감수했다.
 
이러는 사이 대법원은 2018년 11월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첫 무죄 판결을 확정했고, 이후 진행된 1·2심 재판부는 모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이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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