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제목 따라간다”는 말이 실제로 영화계엔 있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생긴 사람 속에서 외모적으로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을 두고 우린 ‘오징어 됐다’란 말을 쓰는 걸 들어 본적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이정재’ 세 글자를 ‘오징어’에 비유하면 ‘비교 대상’으로 그를 생각하진 않는다. 그 앞에 우뚝 선 ‘잘생긴 사람’을 떠올릴 뿐이다. 이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정재가 정말 ‘오징어’가 됐다.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저 멋진 남자가 이 정도로 ‘오징어’가 됐는지 도저히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이정재 본인 조차 “(오징어가 된) 내 모습을 보고 ‘뇌가 없나’ 싶었을 정도였다”라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얘기다. 요즘 ‘오징어 게임’ 모르면 외계인이란 말까지 있다. 국내가 아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콘텐츠가 지금 ‘오징어 게임’이다. 이정재는 이 게임을 이끌어 가는 ‘쌍문동 성기훈’이 됐다. 다시 말하지만 ‘오징어 게임’을 보면 이정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쌍문동’에 사는 ‘성기훈’씨만 나온다. 언뜻 보면 이정재와 이목구비가 아주 조금 비슷한 느낌은 있다.
배우 이정재. 사진/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TOP 1’에 오르며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이정재는 이제 ‘이정재’가 아닌 ‘성기훈’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됐다. 이정재는 ‘성기훈’처럼 ‘실패자’로 불리는 캐릭터를 전혀 안 해 봤던 건 아니다. 하지만 40대 이후 그의 모습에서 이런 배역을 찾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중후함과 멋스러움이 ‘이정재’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니. 이정재가 ‘성기훈’에게 끌린 이유는 이랬다.
“저도 나이를 자꾸 먹잖아요(웃음) 그러다 보니 이젠 악역 아니면 센 역할 밖에 안 들어와요. 근데 근래 제안이 들어왔던 작품 중에 긴장감을 크게 불러 일으켜야만 하는 주도적인 배역은 이게 처음이었어요. 저도 좀 갈증이 있었는데 그때 황동혁 감독께서 너무 좋은 제안을 해주셨어요. 일상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 ‘기훈’이잖아요. 이런 배역이 내게 또 언제 올까 싶었죠.”
배역에 대한 매력은 이정재를 끌어 당기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이미지 혹은 성격적으로 센 배역이나 악역이 아니라서 그가 매력적으로 생각한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점도 있었지만 더 그를 끌어 당긴 건 따로 있었다. ‘오징어 게임’이란 작품 자체의 콘셉트가 너무 마음에 들었단다. 뭔가 호기심을 끌어 당기는 듯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기이하게 다가왔단다. 완성되면 뭔가 사고 칠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오징어 게임' 스틸. 사진/넷플릭스
“글로 읽었는데도 그 느낌이 기이할 정도였어요. 콘셉트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죠. 성인들이 목숨 걸고 하는 서바이벌 게임인데, 그 게임이 우리가 어릴 때 했던 다 아는 그 게임이에요. ‘이게 뭐지?’ 싶었죠. 무엇보다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그 게임 속에 들어온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들이 너무도 세밀하게 다 묘사 돼있었단 점도 눈에 띄었죠. 그런 모든 게 결코 과장되지 않았어요. 다른 작품에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콘셉트 였죠.”
다시 ‘기훈’으로 돌아왔다. 이미 ‘오징어 게임’이 공개됐기에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훈’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모티브로 만들어 진 인물이란 점은 많이 알려진 내용이 아니다. 이정재는 이 점을 황 감독에게 전해 들은 상태다. 그는 이런 점을 고려했고, 그 고려했던 지점과 함께 자신이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해 보지 않았던 일상적인 생활 연기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단다.
“(기훈이 모티브가 된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 대해) 지금도 너무 마음이 아프죠. 그걸 가슴에 안고 ‘오징어 게임’을 하는 게 더 피부로 와 닿았죠. 홍보 문구에도 나오잖아요. 인생 가장 힘든 지점까지 몰린 사람들이 모여 하는 게임이라고. 그것만 봐도 기훈이 해고 이후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 다가오더라고요. 이런 점들을 잘 소화하기 위해 더 긴장했어요. 강한 캐릭터는 초반 설정에서 확실히 잡고 밀고 가면 사실 수월해요. 그런데 기훈 같은 배역은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오징어 게임' 스틸. 사진/넷플릭스
삶의 막다른 길에 몰린 ‘기훈’이다.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 ‘오징어 게임’ 참가다. 그 이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오징어 게임’ 스토리다.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로서 궁금했다. ‘오징어 게임’에는 총 6개의 게임이 등장한다. 30대 중반 이후부턴 6개 게임 중 최소한 1개 이상의 게임은 실제로 경험해 봤음직한 것들이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6개 게임 중 기억에 남고 또 특별했던 촬영을 전했다.
“기억에 남는 게임은 ‘달고나 뽑기’하고 ‘징검다리 건너기’에요. 우선 ‘달고나’는 하하하.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제가 핥아야 하잖아요. 실제로 대본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어요. 근데 막상 촬영 때 하는데 ‘이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그랬어요(웃음). 진짜 목숨 걸고 하는 거라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핥았죠. 그리고 징검다리는 실제로 높이가 한 2M정도 됐어요. 그리고 강화유리인 것도 맞는데, 이게 그래도 유리잖아요. 감독님이 ‘괜찮아요 뛰세요’ 이러셨지만 심리적으로 진짜 무섭더라고요(웃음)”
온라인에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공개 이후 다양한 해석을 담은 글들이 넘쳐 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지막 9화에 등장한 ‘기훈의 빨간 머리 염색’이다. 도대체 왜 기훈이 저런 상식 밖의 행동을 했을까. 다양한 해석이 넘쳐난다. 이정재 역시 촬영을 앞두고 황동혁 감독과 ‘빨간 머리 염색’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빨간 머리는 이정재의 다음 작품 촬영을 위해 실제 염색은 아니었다고.
배우 이정재. 사진/넷플릭스
“‘빨간 머리 염색’은 대본에도 실제로 있었어요. 근데 왜 해야 하는지 저도 좀 의아했죠. 글쎄요. 기훈의 나이 정도된 일반 남성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색깔이잖아요. 감독님과 나눈 대화에서 기훈이 스스로가 절대 하지 않을 어떤 한계를 뛰어 넘는 행동을 그 장면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정말 정교했기에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데 가발이었습니다(웃음)”
극중 ‘1번 참가자’,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설계자인 ‘오일남’과 성기훈의 관계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특히 성기훈이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측은지심이었는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오일남’에게 관심을 주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단 의견도 많았다. 반대로 그런 설정 자체가 ‘오징어 게임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란 해석도 있다. 어떤 쪽이든 이정재의 생각은 이랬다.
“기훈은 아마도 자신보다 약자인 ‘일남’에게 어떤 동정심이라고 할까.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자기도 약자이지만 사회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잖아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런 성격이고, 또 그냥 그런 사람이 ‘기훈’ 같았어요. ‘일남’의 묘한 모습을 ‘오영수 선생님’께서 너무도 잘 표현해 주셔서 저도 ‘기훈’에 빠져서 저희 둘의 케미가 이런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만든 것 같아요. 참고로 선생님이 연세가 많으신데 너무 생각이 젊으세요 그리고 촬영장 그냥 ‘일남’이 돼서 오셨어요. ‘잘 맞았다’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과는 조율 같은 게 거의 없었어요. 그냥 찍으면 됐어요(웃음)”
배우 이정재. 사진/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1화부터 9화까지 시즌1으로 막을 내렸다. 9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기훈의 힘이 실린 대사는 역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의 큰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는 이정재의 절친이자 깜짝 놀랄 배우가 등장한다. ‘오징어 게임’을 주관하는 ‘프론트맨’이 바로 배우 이병헌이다. 이정재는 시즌2에 대한 기대와 이병헌과의 작업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 장면에 ‘이건 잘못된 거잖아. 안 되는 거잖아’란 대사. 정말 힘 없고 용기도 없는 기훈의 어떤 정의감을 드러내는 말이라 너무 기분이 좋았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대사에요. 그런 기훈이 시즌2에선 어떤 모험을 할지 궁금하죠. 그리고 병헌이 형하고는 데뷔 시절부터 친했는데 함께 출연한 작품이 없어요. 그러다 ‘오징어 게임’에서 만났는데 딱 한 장면 만나요(웃음). 시즌2에선 꼭 병헌이 형하고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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