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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연상호 감독은 ‘지옥’을 실제로 봤다
가장 온전하게 현실적으로 두려워할 세기말+디스토피아 창조
‘혼돈→불안→공포’ 순환 구조 속 사회 권력화 시스템 뒷거래
2021-11-25 00:12:00 2021-11-25 12:43: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게 뭔진 모른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니 정말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상을 불문하고 나타나 죽음을 알린다. ‘고지란다. ‘0000 00 00 00시에 넌 죽는다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죽음을 고지한다. 고지를 받은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그 날짜 그 시간에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받으며 숨이 끊어지기 직전 엄청난 고열에 의해 그 당사자는 끔찍한 몰골을 한 채 산채로 화형을 당한다. 이를 두고 누군가 신의 계시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과 소통했단다. 신에게서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입을 통해 세상에 전달된 것은 이렇다. 신이 분노하고 있다. 신이 인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더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라고. 그래, 틀린 말은 없다.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세상.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신이 인간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 했다면. 그리고 고지를 받은 인간들은 정말 죄를 지은 나쁜 사람들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 이건 신이 존재하고 있단 증거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게, 정말 그런 것 일까. 진짜 그런 걸까.
 
 
 
연상호 감독이 만들어 낸 지옥이다. 이 정도 직설적 제목이 전 세계 콘텐츠 역사에 존재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 감독의 이런 직설 화법은 제목 그대로 가장 완벽하고 온전한 지옥을 창조해 낸 자신감이다. 연 감독은 초기 연출 애니메이션 몇 작품을 제외하면(사실 그 작품들조차 포함될 수 있지만) 꾸준히 세기말과 디스토피아에 대해 얘기해 왔다. 이미 부산행반도를 통해 멸망한 한반도 세계를 창조해 냈다. 코미디적 감성이 돋보였던 염력조차 그의 현실적 디스토피아 창조관이 뚜렷하게 투영된 작품이었다. 드라마 방법세계관(영화 방법: 재차의)도 마찬가지. 오컬트의 장르적 특징을 끌어와 현실 세계의 붕괴점을 시사했다. 흥행과 실패를 거듭하며 구축해 나간 연상호 감독의 이런 세계관은 지옥에서 정점을 찍는다. 앞선 모든 작품이 에필로그로 느껴질 정도로 지옥세계관은 가장 온전하게 현실적으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세기말을 고스란히 투영시켜 버렸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느닷없이 등장한 미스터리한 사건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살해(살인)되고 있다. 사회는 혼돈에 빠진다. 혼돈은 불안을 초래한다. 불안은 공포를 만들어 낸다. 여기서부터 연상호의 지옥은 실마리를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공포를 기회로 삼는다. 모든 사회 현상 키포인트, 즉 해법을 찾아나기 위해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답은 나온다. 공포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불안을 이용해야 하고, 불안의 이용법을 터득했다면 혼돈을 조종해야 한다. 그러면 사회를 목적대로 움직일 수 있다. ‘지옥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사회가 혼돈에 빠진다. 그 혼돈의 틈바구니에서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공포에서 기회를 찾아낸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새진리회. 그리고 새진리회를 이끄는 리더 정진수’(유아인) 의장.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그는 새진리회를 종교적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랬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있다. 그는 사회에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이 현상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전파하며 세력을 구축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진수는 혼돈과 불안을 타파할 영도자(일종의 유일신)로서의 위상을 얻는다. 특히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새진리회 영향력이 커질수록 사회는 오히려 그들 모두가 기대하고 바랐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정진수가 설파했던 일종의 교리 더 정의롭게 살라는 신의 명령, 그 명령이 만들어 내는 초자연적 현상과 연속된 죽음. 모두가 깨끗하고 정의롭고 바른 사회를 열망하고 요구했다. 그 앞에 새진리회가 존재했다. 하지만 지옥속 현실은 정 반대로 흘러간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정진수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 사태를 예견해 왔고, 이를 두고 신의 경고라고 해석·설파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배제하고 공포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갔다. 놀라운 점은 다수의 시민들이 새진리회의 이 같은 논리를 따르고 지지한단 점. 가장 끔찍한 혼란과 혼돈의 세상이 뒤바뀔 해법은 역설적으로 혼란과 혼돈만이 남은 세상뿐이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전복된 세상은 새진리회 해석과 초자연적 현상 고지그리고 새진리회와 정진수의 말을 따르는 광신도 폭력 집단 화살촉이 다스린다. 초법적 세상이 열렸다. 그들은 혼돈을 조종해 사회를 집어 삼켰다. 그리고 사람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공포를 이용, 가장 확실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고지 생중계다. 죽음을 생중계한다. 죽음이 이미 하나의 콘텐츠가 된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포를 조장하는 화살촉고지가족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그들의 원죄를 논하기 시작한다. 세상은 이미 죄를 만들고 죄를 거래하고 죄를 통해 믿음을 구걸하는 역전과 역설의 뒤범벅이 됐다. 정진수가 예견해 온 신의 경고가 온전히 지금의 삶과 오버랩되는 것은 새진리회의 반대편에 선 소도세력뿐이다. 민혜진(김현주) 변호사가 이끄는 소도는 새진리회가 이끄는 초법적 세상을 반대한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지옥은 시작부터 등장한 고지현상이란 초자연적 사건, 그 사건 주체일지 모를 보이지 않는 손’, 즉 신이란 존재에 대한 유물론 등을 언급한 정형화된 방향성을 띠진 않는다. 오히려 정형화 틈새를 노린 현실 반영적 디스토피아 세계관 구축과 표현 그리고 감정적 미장센과 묘사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연상호 감독이 구축한 지옥유니버스는 고스란히 지금 현실이 반영된 물리적 평행론까지 거론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듯싶다. 특히 새진리회와 대척점에 선 소도의 움직임과 방향성은 논리와 인간성이 세기말 속에서 어떤 역할과 작동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길라잡이와 지금 지옥을 보는 우리에게 논리의 고민에 대한 방향성까지 제시한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지옥의 유일한 흠이라면 화살촉에 대한 연상호 감독 묘사와 방향성이다. 연상호 감독은 전형적인 이야기꾼이라기 보단 세계관을 구축해 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크리에이터에 가깝다. 그는 이미 반도에서 똑 같은 패착을 경험한 바 있다. 631부대원들을 그리는 데 있어서 세계관 속 과잉 요소를 이번 지옥에서의 화살촉으로 동어 반복을 했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 구성력과 인물 세공력은 분명 차이를 보이고 있단 불필요한 증명이 됐을 뿐이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 사진/넷플릭스
 
그럼에도 지옥을 빼어난 수작과 걸출한 걸작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품이라고 아낌없이 추천할 수 있을 듯하다. 굳이 한쪽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 연상호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빼어난 걸작 세계관이라고 언급하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파괴적인 세기말과 디스토피아 구축에서 전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연출자가 됐다. 그리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희망의 씨앗을 남긴다. 연상호가 계속해서 그려온 세기말과 디스토피아가 매력적이면서도 영화적 세계관에 가장 적확한 유니버스인 점을 부인 못하는 이유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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