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수단된 5%룰①)슈퍼개미, 먹튀도 반성도 5% 지분 공시 활용
'먹튀' 막는 '5%룰'…제도 구멍에 슈퍼개미 차익실현
5%룰, 허위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 띄우기 활용되기도
업계 "지분공시 전 최소 서류만 받아도 피해 줄인다"
2022-08-01 06:00:00 2022-08-01 0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최근 부산 왕개미로 불리는 ‘슈퍼개미’가 ‘5%룰’(주식대량보유보고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대규모 차익을 챙기면서 5%룰의 제도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장기업의 경영권 안정과 투기 세력의 ‘먹튀’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5%룰이 오히려 슈퍼개미들의 먹튀에 악용되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에는 5%룰 공시가 무상증자 테마 탑승을 위해 활용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국내 코스닥 상장사 신진에스엠(138070)의 지분을 대거 사들인 뒤 ‘경영참여’를 선언하며, 회사에 무상증자를 요구한 뒤 3주만에 11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김모씨의 이 같은 수익실현이 가능했던 것은 최근 국내증시의 무상증자 테마 ‘광풍’과 함께 5%룰 등 지분공시의 허점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5%룰은 개인이나 기관이 상장·등록 기업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경우 금융감독원에 5일 이내에 보고해야 하는 제도다. ‘임원·주요주주특정증권등소유상황보고서’와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 두 가지로 나뉘며, 주식들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의 경우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포함해 1% 이상의 지분변동이 생길 경우 결제일 기준 5일 이내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임원·주요주주특정증권등소유상황보고서는 1주만 변동이 있어도 공시해야 하며, 주식이 입고된 날(결제일+2일)을 기준으로 5일 이내 보고할 의무가 있다.
 
5%룰은 자본 시장 및 기업경영권 시장에서 투기 목적의 자금유입을 제어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됐다. 외국계 헤지펀드 등이 한국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해 주가를 올린 뒤 파는 이른바 ‘먹튀’를 견제하고, 큰손들의 움직임도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김모씨는 5%룰의 허점을 이용했다. 지분공시에서 허용되는 5일의 기간과 지분 보유 목적 등 공시 내용을 취득자가 재량껏 기재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김모씨와 특수관계인 B씨는 지난달 신진에스엠 지분 12.09%를 보유했다고 공시하며 주식보유 목적에 대해 “회사의 경영권 확보와 무상증자 요구”라고 설명했다. 신진에스엠은 공시 당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주가는 급등세를 탔지만, 김씨는 주가가 폭등한 당일부터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일과 8일 각각 2만2008주, 39만8941주를 장내 매도했고, 지난 11일엔 전량을 팔아치웠다.
 
지분의 1% 이상 변동이 있었던 8일 김씨의 공시의무가 발생했지만, 실제 공시는 김씨가 모든 지분을 매도하고 난 이후인 13일에 이뤄졌다. 대량보유자의 지분 변동은 5일 이내만 공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슈퍼개미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한 셈이다.
 
반성문으로 활용된 양지사 5% 공시. 양지사 지분공시 화면갈무리
김씨는 신진에스엠 차익 실현 후 양지사(030960)를 대상으로 같은 수법을 시도했지만, 양지사의 발 빠른 대응으로 덜미가 잡혔다. 양지사는 김씨의 지분공시 다음날 “무상증자, 자진 상장폐지에 대한 검토나 계획이 없다”고 공시했고, 주가도 하락했다. 이에 김씨는 지분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하며 “보유 목적으로 시장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사과의 글을 올린다. 죄송하다”고 설명했다.
 
지분 취득자가 지분 보유목적을 기재하는데 있어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슈퍼개미들이 5% 지분투자 공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뒤, 경영권 분쟁을 위장해 주가를 끌어올렸던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8년 3월 한림창투의 경우 이모씨가 7.75%의 지분을 확보하며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이후 경영권 분쟁 이슈로 주가가 치솟았지만, 이씨는 8개월도 채 안 돼 지분을 매각했다. 또 지난 2004년 슈퍼개미로 불리던 김모씨는 한국금속공업의 지분을 17%대로 늘린 뒤 경영 참여를 선언,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지만, 이후 주식을 팔아 차익을 얻었다.
 
전문가들은 슈퍼개미의 시세조종이나 먹튀를 막기 위해 경영권 참여를 위한 지분 취득 공시에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참여를 위한 지분공시 전에 당국이 계획서나 확약서 등 간단한 서류만 받아도 신진에스엠과 같은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분공시 관련 경영권 분쟁 이슈 등 먹튀 논란이 지속됐던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분공시가 항상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 경영권 분쟁까지 이어질지, 그 과정에서 주가가 오를 수 있을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경우가 단순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만큼,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부산 왕개미로 불리는 ‘슈퍼개미’가 ‘5%룰’의 허점을 이용해 대규모 차익을 챙기면서 5%룰의 제도 개선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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