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사이에는 빛 샐 틈이 꽤 있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대북 전단·확성기 놓고 이견 기류
2024-06-27 15:20:35 2024-06-27 15:25:44
북한이 지난 24일 밤부터 살포한 대남 오물 풍선은 350여개이며 경기 북부와 서울 등 남측 지역에 100여개가 낙하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25일 밝혔다.(사진=연합뉴스)
 
"한·미 두 나라 사이에는 빛 샐 틈이 꽤 있다."
(I do think there is some daylight here between the two countries)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미국 최고 장군, 변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을 본다' 기사에서, 북한 핵 문제 전문가 안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역대 한국 정부가 한·미 공조의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관용구로 써온 '빛 샐 틈도 없다'는 표현을 빌려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그는 "한국이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압도적인 대응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에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제한된 공격이 더 광범위한 충돌로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센터(CSIS) 한국 석좌 수석 고문도 이 기사에서 "한국이 보복성 공격에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데, 미국과 조율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했는데요. 윤석열정부가 당시 정찰위성 발사 등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미국과 조율하지 않고 과민 반응해, 필요 이상으로 충돌이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발언들입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현재,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재개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 밖 연구자들 차원이 아니라 미국 정부 인사들이 직접 제동을 거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한 미 대사 "표현의 자유 믿지만 긴장 완화해야" 정세 안정 촉구
 
우선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팟캐스트 대담에서 "표현의 자유를 믿지만 긴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주목받았죠. 그는 이번 긴장 상황이 과거와 다른 이유를 열거하면서 "그 측면에 대해 약간의 주의를 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북으로 가는 전단과 부분적으로는 그 전단들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현직 대사답게 여러 수사들을 달기는 했지만, 사실상 윤석열정부에게 대북전단 살포 자제와 정세 안정을 촉구한 겁니다.
 
다음은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미군 선임장교라는 네 개의 모자를 갖고 있는 폴 러캐머라. '채널A'는 지난 13일 "우리 정부가 북한의 오물풍선에 맞서 꺼내든 대북확성기 사용에 유엔군이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며 "유엔군과 주한미군을 총괄하는 폴 러캐머라 사령관이 어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만나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사용에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폴 러캐머라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선임장교. (사진=뉴시스)
 
"유엔군사령관, 대북 확성기 제동"…유엔사령관, 한국 국방장관 맞상대도 가능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는 "동맹국의 상급자인 국방부 장관의 정당한 조치에 연합사령관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고 부인했죠. 그런데 이와 관련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령부 3개 사령부가 공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지난 12일 회의는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령관 및 주한미군 선임장교로서의 한국의 연합방위태세에 대한 그의 역할과 책임을 논하기 위해 미래 예정돼 있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주한미군 선임장교’ 지위는 잘 알려져 있지만,  미국 국방장관 또는 합참의장을 대리해 한국의 국방장관 또는 합참의장을 맞상대할 수 있는 위상입니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미 국방장관 대리 임무를 띠고 국방부 청사를 방문하는 주한미군 선임장교를 응접실 밖에서 맞이하기도 한답니다. (관련 기사: '한 입으로 네 말'하는 주한미군사령관) 폴 러캐머라가 이 모자를 쓰고 신원식 장관을 만나 미 국방장관의 ‘자제 의견’을 전달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윤석열정부의 9·19 군사합의 폐기에 대해서도 미국은 마뜩잖은 분위기였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한미 국방장관회의에서 신원식 장관이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면서 긴밀하게 소통해 나가자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겁니다.
 
미국, 전통적으로 전면전 확대 막기 위해 한국 자제시켜 완화
 
사실 미국 정부와 주한미군의 이런 모습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 8월 북한이 설치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이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을 때 주한미군은 한국군의 북한 초소 보복 공격에 반대했죠. 또 1968년 북한군 무장부대가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던 '1·21 사건' 때는 구체적인 보복 공격을 검토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만류하기 위해 사이러스 밴스 특사까지 보내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밴스 특사에게 "박정희가 베트남에서 한국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하면 미국도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대응하라"는 훈령까지 줬습니다. (관련 기사: "박정희, 對北 선제공격 고려")
 
전통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미군이 직접 관계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남북 간 충돌 자제를 추구해 왔는데, 전면전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더욱이 지금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만으로도 허덕이고 있습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은 남북 간의 전쟁 억지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필요한 존재이며 통일 후에까지 주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 바 있는데요. 지금도 주한미군이 오히려 한반도 긴장 고조를 억제하고 있는 형국이기도 합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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