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로보틱스·밥캣, 무늬만 '합병 철회'…"두산밥캣 방지법 절실"
두산, 밥캣-로보틱스 포괄적 주식 교환 철회
100% 자회사 아니지만 합병 계획 그대로
김현정 "소액주주 피해 여전, 법안 통과 총력"
2024-09-11 14:56:36 2024-09-12 06:55:12
 
 
[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두산(000150)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에서 한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소액주주들의 피해는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두산로보틱스(454910)-두산밥캣(241560)'의 100% 흡수합병은 철회했지만 분할·합병은 그대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두산그룹 개편안을 계기로 등장한 이른바 '두산밥캣 방지법'의 통과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시장 비판 의식…두산로보틱스·밥캣 합병 철회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초 계획은 로보틱스와 밥캣이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밥캣을 상장폐지 시키고 로보틱스가 밥캣을 100% 자회사로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이를 철회한 겁니다. 각 대표이사 명의 주주 서한을 통해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들과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며 철회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로보틱스가 밥캣을 100% 소유하는 개편안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밥캣의 상장폐지도 무산됐습니다. 
 
지난 7월 두산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거셌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옮긴다는 내용이 골자였는데요. 개편안이 공개되자 시장에선 비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을 대표발의해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 강화와 계열사 간 합병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법안은 기업이 합병 등 가액을 결정할 때 주가 등을 기준으로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금감원은 합병 비율의 적정성을 이유로 로보틱스가 제출한 분할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위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두 차례 정정을 요구하며 비판에 가세했습니다. 구조개편 관련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 및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될 필요성이 있으며 분할신설부문의 수익가치 산정 근거 등이 미흡하다는 지적입니다. 주주들도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에너빌리티 주주들은 캐시카우인 밥캣을 떼어줌에도 적절한 시장가치를 산정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밥캣 주주 역시 적자회사인 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교환에서 주가로만 교환 비율을 산정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밥캣 분할·합병은 그대로…에너빌리티 주주 손해 '여전'
 
두산이 이같은 여론을 의식해 지배구조 개편안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밥캣과 로보틱스 간 주식 교환만 뺀 나머지는 그대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라 에너빌리티 주주의 손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포괄적 주식 교환만 철회하고 에너빌리티로부터 밥캣을 분할해 로보틱스에 합병하는 형태인데요. 먼저 에너빌리티가 신설법인을 만들어 보유 중인 밥캣 지분 46.06%를 신설법인에 넘깁니다. 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로보틱스가 합병해 밥캣을 자회사로 두게 됩니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간 포괄적 주식 교환은 철회됐지만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밥캣을 인적분할해 로보틱스에 합병하는 계획은 여전히 추진 중이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 분당두산타워 전경(사진=뉴시스)
 
지배구조 개편이란 명목으로 지주사 지배력 강화가 단행된다는 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현재 두산의 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은 14%지만 분할·합병 후 27%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두산은 에너빌리티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지만 합병 후 로보틱스 지분 59%까지 보유하는데요. 로보틱스 지분을 더 많이 들고 있기 때문에 간접 지분율도 덩달아 상승합니다.
 
에너빌리티가 밥캣을 떼어내기 위해 만든 신설법인과의 분할비율, 신설법인과 로보틱스 간 합병비율에 대해서도 이견이 오가는 상황입니다. 에너빌리티 존속법인과 신설법인 간 분할비율은 장부가액 기준으로 0.75대 0.25입니다. 신설법인과 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은 1대 0.13인데요. 최종적으로 에너빌리티 보통주 1주는 분할비율 0.25와 합병비율 0.13을 곱한 0.03으로 계산됩니다.
 
예를 들어 에너빌리티 100주를 가진 주주는 에너빌리티 75주에 로보틱스 3주를 받습니다. 지난 10일 종가 기준으로 보면 에너빌리티 주식 165만5000원어치가 분할·합병 후 143만29500원의 에너빌리티, 로보틱스 주식으로 바뀝니다. 에너빌리티 주주는 13.5%의 손해를 보게 되는 셈입니다. 에너빌리티 주주는 이 같은 손해를 감수하지 않기 위해 분할·합병을 반대하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시 회사는 주당 2만890원의 가격에 주식을 사야 합니다. 현 주가를 봤을 때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주주에게 유리하다는 평이 우세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전문가들은 두산과 같은 대기업이 지배구조 개편을 명목으로 지주사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소액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면, 종국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기업의 주인이 주주가 아닌 재벌 일가라는 인식이 있다"며 "그룹의 결정과 주주의 의견이 충돌하게 되는데 이런 부분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한 김현정 의원은 두산이 합병 계획을 반발 여론 때문에 일부 철회했지만 소액주주들의 피해는 여전하다며 두산밥캣 방지법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두산밥캣이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가는 건 그대로"라면서 "그 과정에서 밥캣, 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전과) 똑같고, 지주사의 밥캣 지배력도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서 불거지는 주주가치 훼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만간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두산밥캣 방지법 통과에 전념한다는 계획입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