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새해 1월이면 기억하는 날들이 있었다. 1월14일,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사망한 날이었다. 그의 죽음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 국가권력이 남용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매년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와 투쟁이 곳곳에서 있었다. 한 해의 투쟁 선포식 같은 날이기도 했다.
2009년 1월20일에는 용산 참사가 있었다. 용역 깡패에 쫓겨서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에 들어간 철거민들을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농성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안전 대책 없이 강경 진압이 가져온 최악의 참사였다. 잔인한 공권력은 그해 8월 쌍용자동차 강경 진압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1월에 기억해야 할 날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해 1월19일 오전 3시,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자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 서부지방법원을 난입해서 법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없었던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기물은 파손되고, 영장전담판사 사무실도 파괴되었다. 법원 난입을 막던 경찰이 폭행당했고, 법원 직원들은 옥상으로 대피해야 했다. 단순 재산 피해액도 6억원에 이르렀다. 폭도들 앞에서 국가기관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사건이었다.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137명이고, 이 중 20~30대가 54.7%였다. 40~60대는 42%라고 밝힌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에 있는데, 이런 폭동을 교사한 이들로 꼽히는 전광훈 목사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다.
12·3 비상계엄도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한밤중 법원 난입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혐오 세력의 힘이 성장한 가운데 이제는 공권력도 무시하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점, 그 대상이 법원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지난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세력이 성장해 있다는 사실을 뜨겁게 확인했다. 세계에서 현직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탄핵해서 끌어내고 감옥에 보낸 나라는 없다. 비상계엄이 실패한 데에는 시민들의 저항이 큰 몫을 했으나, 계엄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의 의도적인 불복종도 큰 몫을 했다. 그만큼 민주주의 의식은 군에까지 뿌리내리고 있었다.
1월19일은 민주주의 파괴의 날로 기억돼야 한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해 1월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파손돼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는 별 힘을 못 쓰던 혐오 세력이 이제는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걱정되는 지점이다. 이 혐오 세력들은 아직도 ‘윤석열 어게인’을 외치고 있고, 중국이 개입해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근거 없는 주장들을 퍼뜨리고 있다. 그에 이어서 중국인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몰려가서 시위를 벌이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명동에서도 시위를 이어갔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이분법의 사회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이분법 사회에서는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다양성이 없는 경직된 사회에서는 증오범죄가 언제고 확산될 수 있다. 형사처벌과 함께 민사상의 책임도 단호하게 물어야 한다. 이들에게 관용을 베푼다면, 그것은 혐오 세력에게 용기를 주는 짓이다. 그 용기 뒤에는 우리 사회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1·19 법원 폭동 사건이 똑똑히 보여주었다. 1월19일, 나는 이 날을 민주주의 파괴의 날로 기억할 것이다.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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