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역린과 정성: 붕당의 미망을 깨는 리더십
2026-07-03 06:00:00 2026-07-03 06:00:00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
 
세손 이산이 남긴 이 한마디는 한 인간의 감상이 아니라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절규에 가깝다. 영조의 조정은 노론과 소론의 붕당이 각자의 생존과 기득권을 지키는 공간이었다. 그 비극의 끝에는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었고, 그 죽음을 목도한 정조에게 왕위란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영화 <역린>은 단순히 한 왕의 암살을 둘러싼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이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되었을 때 얼마나 잔혹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정치극이다. 정조를 제거하려 했던 칼끝은 한 군주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통치,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리더를 끝내 용납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의 본색이었다. 
 
이 시점에서 오늘의 민주당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당대회를 앞둔 지금, 당내 계파정치는 다시 한번 국민에게 묻는다. 지금이 정말 2026년의 민주정당인가, 아니면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영조 시대인가. 당의 미래와 국민의 삶보다 세력의 재편과 주도권 회복이 먼저인 듯한 움직임, 살아 있는 권력을 흔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행태는 <역린> 속 정조의 암살을 모의하던 붕당의 그림자를 떠오르게 한다. 
 
붕당정치와 계파정치의 가장 무서운 공통점은 리더에 대한 오만한 시선이다. 노론 벽파의 수장이던 홍인한은 “세손은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와 병조를 알 필요가 없고, 나랏일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른바 ‘삼불필지(三不必知)’다. 왕은 스스로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이 정한 길을 따르는 존재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계파가 리더를 자신들의 이해를 실현하는 도구처럼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정조는 그런 정치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는 계파의 눈치를 보는 군주가 아니라 백성을 바라보는 군주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늘 가슴에 품었던 것이 『예기』의 ‘중용’ 23장이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조는 알고 있었다. 수장 한 사람을 없앤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한 무리를 몰아낸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권력은 언제나 빈자리를 또 다른 권력으로 메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없애기보다 정치를 바꾸려 했고, 그 출발점으로 '정성'을 선택했다.
 
영화 <역린>은 붕당정치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불거진 정조 시해 시도 사건을 1777년 7월28일 하룻밤에 벌어진 일로 그리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정성’을 목도하고 있다. 집권 1년 만에 모든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작은 일도 직접 챙기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모습은 조금씩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고, 감동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달랐던 마음이 같은 방향을 볼 때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 국민은 분명히 알고 있다. 정치란 현란한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실천이라는 사실을. 
 
결국 <역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정치는 누구의 것인가. 세력의 것인가, 국민의 것인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해야 한다. 이미 국민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계파라는 낡은 붕당의 덫에 갇힌 자가 아니라 붕당의 미망을 깨고 오직 국민을 향해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힐 리더가 될 것이다.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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