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는 5000개가 넘는 상장사 주식을 100주씩 보유한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그 주식을 사고팔지 않는다. 의결권으로 안건을 좌우할 수 없고, 주식을 처분해 주가로 압박할 수단도 없다. 주주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두 가지 고전적 경로가 막힌 셈이다. 그럼에도 기관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회사에서는 실적을 부풀리는 회계 처리가 줄었고, 지배주주 일가의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내부거래도 줄었다. 지분 없는 주주가 무엇으로 기업을 움직였는가.
기관의 이름은 중국증권투자자서비스 센터다. 2014년 설립된 비영리 기구로, 최소 단위의 지분을 취득한 뒤 주총에서 질의하고, 안건에 반대하며, 필요하면 소송을 낸다. 설립 배경은 단순하다. 소수주주권은 법전에만 존재하고, 사외이사 제도 역시 거수기라는 평가를 넘어서지 못했던 중국이 택한 해법은 규칙을 하나 더 얹는 게 아니라, 그 규칙을 행사할 주체를 만들어 시장 안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10년이 넘는 운영 성과는 회계와 거래 관행에 그치지 않는다. 기구가 개입한 회사는 투자자 질의에 더 빨리, 더 구체적으로 답했다. 수조 원대 분식회계 사건에서는 5만명이 넘는 개인투자자가 변호사 선임 없이 배상을 받았다. 주목할 대목은 성과의 크기보다 그것이 나타난 위치다. 변화는 증권사 분석 보고서가 없고, 기관투자자 지분이 미미하며, 중소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은 회사에서 뚜렷했던 반면, 이미 시장의 감시를 받던 회사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감시가 부재한 자리를 메웠던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기구가 없지만, 공백을 메울 필요는 이미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됐고, 다음 달이면 대규모 상장사를 대상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가 시행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하려면 후보를 추천할 주체가 있어야 하고, 충실의무 위반을 다투려면 소를 제기할 주체가 있어야 한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실제 제기된 소송은 10건 남짓이다. 권리를 만드는 일과 권리 행사 주체를 확보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이 공백이 가장 깊은 곳이 코스닥이다. 코스닥 상장사는 개인 주주 비중이 높고 기관투자자 지분은 한 자릿수인 경우가 흔하다. 최근 정비된 제도의 상당 부분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탓에, 코스닥 기업은 규범의 확충에서도 비켜서 있다. 중국의 실험이 한국에 던지는 함의가 곧바로 닿는 지점이 여기다. 기구가 변화를 만들어낸 회사의 조건과 지금 코스닥 중소형주가 놓인 조건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설계를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관치라는 비판이 잇따를 것이고, 실질적 근거도 있다. 실제 중국에서 정치적 배경이 두터운 회사를 대상으로는 억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권위에 기대어 작동하는 장치는 그 권위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멈춰 선다. 한국에서 그런 권위는 재현하기 어렵고, 재현해서도 곤란하다.
참고할 다른 답은 이미 논의 선상에 있다. 대만은 20여년 전 비슷한 성격의 투자자 보호 기구를 설립하면서, 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주된 수단은 소송이다. 회사법이 대표소송에 요구하던 지분율과 보유기간 요건을 면제해, 1주만 보유해도 이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이 이사를 직접 해임할 수 있고, 해임되면 3년간 상장사의 이사나 감사로 선임될 수 없다. 우리 상법에도 이사 해임 청구 제도가 있으나, 일정 지분 보유와 주총 부결을 전제로 하는 탓에 사문화돼 있다.
그러나 대만 모델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송은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기구는 사고 전부터 그 자리에 있다. 앞서 짚었듯 변화의 폭이 가장 컸던 곳은 아직 사고가 나지 않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회사였다. 코스닥 중소형주가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설계의 방향은 여기서 도출된다. 제도의 골격은 대만에서 구해야 한다. 상시성은 중국 모델의 몫이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이사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나 의무를 위반한 사람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장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대만에서는 법원이 그 역할을 하고, 중국에서는 시장이 평판으로 같은 결과를 만든다. 한국에서는 아직 어느 쪽도 작동하지 않는다. 규범을 설계하는 국면은 지나왔다. 이제 그 규범을 실제로 행사할 주체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윤태준 한국ESG연구소 거버넌스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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