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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ELW시장에 대한 오해와 진실
HMC투자증권 재판부 "시간우선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아"
2011-12-15 16:19:06 2011-12-15 16:20:36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주문처리상) 시간우선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ELW(주식워런트증권) 관련 사건을 심리한 두 재판부의 동일한 판단이다.

검찰은 지난달 대신증권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에도 HMC투자증권 제갈걸 사장의 공판 내내 '스캘퍼의 거래 속도를 의도적으로 빠르게 해준 게 과연 정당한가'라며 증권사의 '특혜제공'을 문제 삼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검찰은 증권사의 영업이익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먼저라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증권사가 DMA(증권 자동전달시스템, 직접 전용주문)시스템을 스캘퍼에게만 비밀리에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같이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김시철 부장판사)는 15일 열린 HMC투자증권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형사처벌 영역과 정책적·행정적 규제 영역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는데, 검찰이 기소 근거로 삼은 '특혜 제공'은 범죄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스캘퍼 특혜 제공, 비밀 아니다"

금융거래에서 특정 고객만의 주문이 상대적으로 빨리 처리되면 일반투자자 고객들은 최소한 그런 사실을 알권리가 있는데 증권사가 이를 알리지 않았기에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DMA시스템은 세계적 추세이며 이미 국내 증권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캘퍼들이 증권사를 찾아다니며 거래를 성사시켜왔던 사실에 비춰보면 증권사에서 일반투자자들 몰래 스캘퍼에게 전용시스템을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LW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스캘퍼 조모씨(기소)의 경우는 타증권사에서 ELW를 거래하다 속도가 느려서 현대증권으로 옮긴 예다.

조씨는 현대증권에 대한 재판 도중 "전용시스템을 제공받은 게 일반투자자에 비해 '특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더 많은 돈을 내는 만큼 비행기를 타더라도 VIP에게 그정도의 특혜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법원은 증권사가 스캘퍼들에게 제공하는 '미가공 원데이터'는 알고리즘 매매 방식의 특수성으로 인해 도입된 것일 뿐 '스캘퍼의 매매기법 자체' 또는 '주문처리 속도'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속도의 면에서 가공·편집된 시세정보를 제공받는 경우와 차이가 0.001초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며, 원데이터를 그대로 일반투자자에게 전달하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형태가 아니라서 변환해서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초자산 가격을 보고 LP(유동성공급자)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스캘퍼에게 시험을 볼때 힌트까지 독점적으로 주는 것과 같다'는 검찰의 주장은 미가공 원데이터 제공이 이뤄지게 된 경위에 대한 사실관계에 부합히지 않는 무리한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일반투자자 손해, 스캘퍼 탓 아니다"

법원은 ELW 시장에서 일반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이유는 'ELW 시장의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 스캘퍼 탓이 아니라고 재차 확인했다.

재판부는 일반투자자들이 손실을 입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시간가치의 손실', 'LP 호가 스프레드로 인한 손실', 'ELW 거래 수수료 비용'을 거론하며 일반투자자들의 투기적인 매매형태도 가미돼 손실을 증폭한다고 봤다.

즉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0원에 수렴되는 ELW 시장의 특성상 '단기간 내에 기초자산의 가격이 일반투자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동해 행사가격에 진입'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반투자자들이 손실를 입는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극미 미미한 경우(0.006%~0.008%)를 제외하면 스캘퍼의 주문과 일반투자자의 주문이 출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일부 일반투자자들이 스캘퍼로 인해 거래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오해하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ELW 호가 잔량 정보'가 전송되는 과정에서 그 전송이 1.3~1.4초 지연돼 발생하는 착시현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반투자자들이 HTS 화면으로 보는 LP 호가잔량정보는 변경되기 전의 과거 호가잔량정보라서, 일반투자자가 호가변경전 가격으로 ELW를 매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LP가 이미 호가를 변경했기 때문'이지 스캘퍼 탓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증권사 형사처벌할 근거 없다"

대신증권과 HMC투자증권에게 무죄를 선고한 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결같이 "증권사를 형사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스캘퍼들의 거래는 일반투자자들의 거래 기회를 직접적으로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투자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위험성이 없다"며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특혜 서비스'를 제공한 증권사의 행위 역시 DMA 서비스가 사실상 허용되어 온 현실, '주문처리 과정에서 속도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명확하게 선언되거나 그 실현가능한 방법과 기준이 제시된 바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형사처벌의 영역과 정책적·행정적 규제 영역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두 재판부의 결론이다.

재판부는 "증권사의 주문접수 시점 또는 개개 주문의 선후를 정확히 판별하거나 주문 속도를 일치시킬 방법조차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 이 사건과 같은 행위를 형사처벌하고자 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영역을 너무 확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법원은 'ELW 불공정 거래' 논란은 금융감독 당국이 ELW 시장의 공정성과 대외 경쟁력, 전자통신 기술의 발전 상황 등에 대한 검토를 거친 다음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할 일인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나머지 증권사도 무더기로 연말에 결심·연초에 선고할 듯
 
지난 6월 검찰은 ELW 매매 과정에서 스캘퍼들에게 전용선 등 편의를 제공해 수수료 수입을 챙기고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했다는 혐의로 대신증권 등 12개 증권사 대표와 임직원, 스캘퍼 등 48명을 기소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22부와 25부·27부와 28부, 각각 4개 재판부에 나눠 심리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무죄 선고를 받은 대신증권 사건은 담당 재판부인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가 일주일에 3일이나 하루종일 재판을 진행해 ELW 관련 사건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척, 증권사들 중 처음으로 유·무죄를 가릴 수 있었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HMC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증권사에 대한 결심과 선고도 연말과 연초에 차례로 이뤄질 전망이다.

대신증권에서 ELW 거래를 한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3년과 1년을 구형받은 스캘퍼 박모씨와 정모씨에 대한 선고는 이달 말 이뤄질 예정이며, 오는 19일에는 '대우증권'·'유진투자증권'·'LIG투자증권'·'삼성증권'·'한맥증권'에 대한 결심공판이 진행된다.

'KTB·우리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을 심리하는 재판부(22부)는 20일에 한 기일 더 공판기일을 열고 이달 말 결심할 방침이다.

이처럼 이트레이드와 현대증권(25부)을 뺀 나머지 증권사들에 대한 결심공판이 이달 말까지 잇따라 이뤄지면 내년 중순경 8개 증권사에 유·무죄 여부도 가려질 전망된다.

법조계 안팎에선 각 증권사별로 공소사실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재판 결과에서 무죄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검찰이 결정적 근거를 재판부에 추가로 제시하지 않고는 앞서 내려진 법원의 판단을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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