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말한다!)신석훈 "재벌개혁이 성장둔화 초래"
(특별기획)④"지나친 평등주의는 패착..성장동력 유지해야"
2012-07-20 15:59:51 2012-07-23 10:00:08
[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기자]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마치 재벌이 온갖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 미리 ‘짐작’해 ‘아예 싹부터 자르자’는 식으로 소유구조를 파괴하려는 점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주장이다. 법학박사 출신으로 지난 2006년부터 기업정책, 법 경제학 연구 등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 연구위원은 최근 경제민주화 논쟁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재계의 ‘대변인’이다.
  
그는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에서 하강국면으로 접어든 이면에 재벌개혁이 있다"면서 "지나친 평등주의가 성장 둔화의 원인이 됐다"고 역설했다. 즉 "경제민주화를 안 했기 때문에 성장이 더딘 것이 아니라 너무 강조한 것이 패착"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치권에 대한 경계심도 가감없이 털어놨다. 그는 여야가 앞다퉈 내놓는 경제민주화 주장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연말 대선)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이는 또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낳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경제민주화도 성장의 축을 유지하면서 가야 한다"면서 “경제력 집중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과 불법행위 등은 엄단하되 기업의 성장동력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치 "앞질러가는 사람을 끌어내려 함께 가자는 하향 평준화식은 안 된다"는 얘기였다.
 
인터뷰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경제연구원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음은 신석훈 선임연구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재벌에 대한 반기업 정서가 조장되고 있다"며 "큰 틀에서 경제민주화에 동의하지만 하향평준화식이 아닌 상향평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용어 정의부터 해보자. 또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경제민주화가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로 등장했는지 배경도 한번 짚어보자. 
 
▲2008년 외환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납품단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하도급 문제가 불거졌다. 이듬해에는 SSM(기업형슈퍼마켓) 문제도 제기됐다. 이게 발단이 됐다. 갈등이 빚어지면서 상생, 동반성장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이건 좀 ‘구호’ 느낌이 강했고, 포퓰리즘 성격이 있었다. 그래서 헌법에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끄집어낸 것이다. 
 
헌법에서 시작된 개념이지만 여기에 대해 헌법학자들이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상 이 조항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른다. 너무나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 뒤늦게 발견돼 의미 탐구가 시작됐지만 아직은 불분명한 것이 경제민주화다.
 
현재의 경제민주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우리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경제민주화에 어떤 명확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건 누구라도 확실히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요체로 부상했다. 그만큼 재벌 체제의 문제점이 많았다고 할 수 있는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정치권에서 재벌개혁이라는 화두는 늘 논의돼 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그런데 1980년대 당시 대두됐던 재벌개혁과 현재의 경제민주화가 다른 점이 있을까? 논의되는 차원을 따져보면 실상 거의 다른 게 없다. 물론 파급력 측면에서 좀 더 힘을 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재벌이 불공정거래를 저지른다는 인식인데, 이건 사실 법으로 엄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요즘 논의되는 재벌개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재벌이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특정 행위에 대한 가능성이 있으니, 이에 대비한 구조를 사전에 미리 마련하려는 것이다. 특히 지배구조와 관련해 출총제, 금산분리 등이 그렇다. “아예 싹부터 자르자, 구조부터 뜯어고치자”는 접근이다. 물론 취지는 좋다. 하지만 재벌 구조가 늘 나쁜 경제행위와 결부되고, 항상 시장지배력이 남용되는 건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오너경영에 대한 공격도 있다. 작은 지분을 갖고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권력남용이 될 수도 있지만, 반면 기업운영이 될 수도 있다.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경영할 때는 주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 항상 주가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의 기업경영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면 오너는 외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적대적 M&A에 대해서도 비교적 안전하다. 현재의 지배구조가 총수 권력이 남용이 될 위험성이 있다 해서 과도하게 압박하면 장기적인 사업 가능성 등의 장점이 사장된다. 지배구조의 괴리가 생긴 건 좋은 측면도 있고 나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그 괴리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려고 들기 때문에, 물론 위험성도 제거되면 장점도 제거된다. 출총제, 순환출자 금지는 지나치게 사전에 구조를 뜯어 고치려는 거다.
 
-골목상권 침해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총수 일가들이 줄줄이 연루되면서 문제가 커지지 않았나. 
 
▲골목상권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으면 이렇게 (재벌개혁 논의가) 커지진 않았을 거다. 작은 것에 욕심을 낸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재벌이 있고, 또 아닌 재벌이 있다. 그런데 이건 법으로 해결할 게 아니다.  문제가 있고 치유를 해야 한다고 해서 과잉규제로 가면 안 된다.
 
법으로 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차별적인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잘하는 기업들도 있지 않나. 일괄적으로 법으로 통제할 게 아니다. 정말 나쁜 짓하는 기업들을 엄벌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자유로운 기업활동은 보장해야 한다. 법으로 할 수 있는 부분과 도덕적, 관습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부분은 구별돼야 한다.
 
-장하준식 경제민주화, 즉 ‘재벌과의 대타협’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벌과의 타협을 통한 재원 마련, 그리고 복지로의 투입이 주장의 핵심인데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우호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가가 선처를 베풀고 그에 대한 대가를 내놓으란 부분에 대해선 반대한다. 재계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업들은 경쟁을 통해 살아남고 성장한다.  말이 미쳐서 날뛰는걸 때려잡자는 게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장하준 교수 주장은 날뛰는 말에 ‘복지’라는 수레를 달자는 것이다.
 
논리는 상당히 그럴듯하다. 어차피 복지는 성장을 전제로 한다. 말이 움직이지 않으면 복지도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걸 법적으로 강제하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한경연에서 사회통합센터를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넛지 전략을 쓰는 게 더 좋다는 거다. 자발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 물론 쉽진 않다.
 
-재계가 성찰과 자구책을 내놓는 대신 오직 방어논리에만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경련이 일선에 서 있는데, 경제민주화 열풍 국면에서 전경련의 진정한 역할은 뭘까.
 
▲전경련과 한경연, 둘 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변했다. 물론 재계의 논리를 구성하고 이론적 측면에서 백그라운드를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지만 최근에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에 대한 문제를 함께 아우르기 위해 사회통합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먼저 경제민주화 토론회를 제시한 것도 재계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대기업만 대변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전체를 아우르면서 같이 가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그 길로 가는 게 맞다. 예전엔 비슷한 논지의 말을 해도 ‘포장’을 잘 못한 측면이 있다. 이제는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통합에 대한 모색’이 있다. 두고 보면 변화가 감지될 것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경제민주화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지향점과 이를 위한 정책방향은 다르다. 일각에선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만 봐도 90%에 가까운 수준이 경제민주화에 찬성한다. 문제는 국민들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공정한 시장? 모두가 공감한다.
 
정치인들이 헌법에 보장된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건 좋은데 너무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정당들끼리 “우리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몇 개다”, “너희는 몇 개다” 이런 식으로 싸우고 있다. 사실 숫자를 가지고 싸우는 건 말이 안 된다. 법안은 10개든 100개든 만들 수 있다.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강조점에 있어 차이가 있다. 새누리당은 행위 위주의 법안을 내세우고 있다. 재벌이 어떤 행동을 했을 경우 강하게 규제하는 거다. 민주통합당은 구조의 문제라며 지배구조를 뜯어고치는 재벌개혁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한다. 물론 재벌이 100% 나쁜 기능만 한다면 그게 옳지만, 분명 재벌 대기업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구조의 긍정적인 면은 살리면서 파생되는 문제점을 찾는 것을  정치권에서 같이 고민해야 한다.
 
◇신석훈 연구원은 "경제민주화를 안했기 때문에 성장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것이 패착이라는 의견도 고려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성장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근원적 회의도 있다. 현 정부 들어 성장의 과실이 아래로 흐르는, 소위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요구하는 규제만 푼 격이 됐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낙수효과 발생 여부에 대해 사실 좀 모호하다.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단적인 예로 하도급 문제와 관련해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간 격차는 확실히 좁혀졌다. 문제는 1차 하도급과 2차 하도급, 3차 하도급 등 아래 연결고리에 대한 부분이다.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2, 3차 하도급에 더 시선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인해 1980년대 후반 고도성장이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문제인식도 있다. 이면을 보면 재벌개혁이 있다. 80년대 후반에 공정거래법, 출총제, 상호출자규제, 지주회사규제 등이 도입됐다. 이미 그때부터 지나친 평등주의가 강조됐다. 이후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재벌규제와 관련한 정책이 더 많아졌다. 그때부터 우리 성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1980년대 경제민주화 정책을 잘못 사용한 것이 지금 성장둔화의 이유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평등에 너무 큰 무게추를 뒀다는 얘기다. 지금의 상식과는 전혀 반대의 생각인 셈이다. 경제민주화를 안했기 때문에 성장이 더딘 것이 아니라 너무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것이 패착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
 
경제민주화도 성장의 축을 유지하면서 가야 한다. 지금 마치 경제민주화 개념은 앞질러가는 사람을 끄집어내 함께 가자는 분위기다. 제도나 법이 그렇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옳지만, 현행 방식이 강한 쪽을 눌러서 약한 쪽을 보호하자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성장은 성장대로, 약한 쪽은 성장하도록 밀어주는 게 동반성장이다.
 
일례로 하도급법도 마찬가지다. 현행 하도급법은 일방적으로 대기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하도급 부당감액에 대한 조항 등이 대표적이다. 법은 대기업이 가격을 깎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본다. 정말 후려치기 위해 깎는 경우가 있고, 경쟁력 재고나 생존 차원의 인하가 있다. 근데 법은 이유를 불문하고 ‘악’으로 본다. 약자 보호는 맞지만 그 방법이 강자를 눌러서 가는 방법이 돼선 안 된다.
 
-시장구조를 보면 사실 완전경쟁의 영역은 없다. 다수의 영역이 몇몇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로 형성돼 있다. 재벌들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독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담합 등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이익을 추구해왔다.
 
▲독과점 구조는 당연히 통제해야 한다. 담합을 처벌하고 시장지배자의 남용 행위 등을 엄벌해야 한다. 정작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런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재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잡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공정위가 처리하는 사건의 70~80%는 하도급 관련 불공정행위를 적발하는 일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진짜 역할은 담합 등의 독과점을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제한된 행정자원으로 시장 구조적인 문제에 연구하고 통제하긴 어렵다. 공정위는 행정구조상 ‘성과’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담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 등을 잡으려면 시장효과를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여기엔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 그러다보니 자꾸 행위 쪽에 포커스를 맞춘 불공정거래행위 적발에 치중한다. 당장은 성과도 많아 보인다.
 
본질적으로 불공정거래행위 쪽은 법원이 하는 것이 맞다. '불공정'이란 개념 자체가 법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반면 독점이나 과점 등의 시장현상은 경제학적 개념이다. 공정위는 하도급의 구조를 보고 분석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하도급 업체들이 경제적 약자이고, 법원 문턱이 높기 때문에 공정위가 있어야 한다는 반박도 있는데 그게 문제라면 법원 문턱을 낮추면 된다.
 
예전에야 변호사가 귀했지만 요즘은 공급이 넘쳐난다. 국가가 하도급업자, 중소기업을 위해 뭔가 하겠다면 이같은 방향에서 지원해야 한다. 또 공정위의 불공정거래 행위와 관련한 해결방식은 통상 과징금 부과다. 하도급업체에 대한 보상금이 아니라 원청업체에 과징금을 징수하고 그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하청업체 입장에서 피해금액을 보상받으려면 결국엔 법원에 가야한다.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이 쉽게 소송을 걸고, 빨리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다.
 
-경제민주화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말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책, 구조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미시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고민해야 한다. 너무 상위개념, 경제민주화라는 것에 얽매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다 갖다 붙인다.
 
독일이나 미국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없다고 해서 재벌천국이 아니다. 지금 경제민주화의 큰 방향성 제시 이외에 소모적인 내용에만 천착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개선했을 때 득과 실을 따져보자. 우리나라엔 경영권 방어제도가 생각보다 약하다. 그 과정에서 순환출자를 끊어버리면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큰 틀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방향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정책과 효과 위주로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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