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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에 대한 존경심으로 시작하는 작업”
<윤동주, 달을 쏘다> 쓴 극작가 한아름 인터뷰
2012-08-11 10:39:43 2012-08-11 10:40:32
[뉴스토마토 김희주인턴기자]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청년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가 무대에 펼쳐진다.
 
윤동주의 짧지만 뜨거웠던 삶을 다룬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10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의 한아름 작가와 오상준 작곡가가 또 한 명의 위인을 기리기 위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 더욱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특히 윤동주의 고뇌와 해방에 대한 주변인물들의 열망이 얽히고 설키면서 암담했던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낼 예정이다.
 
무대의 여백을 활용한 무대연출과 각 장면의 의미를 함축한 군무, 그리고 여덟 편의 시가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윤동주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을 들려준다.
 
세상과의 이별이 너무 빨랐던, 청년 윤동주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어낸 <윤동주, 달을 쏘다>의 한아름 작가를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났다.
 
- 극의 제목이자 뮤지컬 엔딩 넘버인 ‘윤동주, 달을 쏘다’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윤동주 시인 전반에 깔려있는 정서는 ‘부끄러움’이다. 그 시대 나라 잃은 지식인의 고뇌와 부끄러움이 달이 돼 따라다닌다. 그래서 극 초반에는 초승달이었던 것이 끝날 때쯤에는 만월이 돼 윤동주 시인을 괴롭게 한다. 시간이 갈수록 부끄러움은 그만큼 커지고, 그러한 자신의 고뇌를 들여다보는 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윤동주는 마지막에 달을 쏜다. 달을 쏘고 나면 그 달이 별이 되어 그가 마지막에 썼던 시 ‘별 헤는 밤’처럼 별 하나에 사랑이 되고, 별 하나에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 작가에게 시인 윤동주는 어떤 존재인가? 작품을 쓰기 이전과 이후 어떻게 달라졌나?
 
▲ 학교 다닐 때 문예반이었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서정시인으로 여겼다. 그는 민족투사도 아니었고, 한용운처럼 저항시인으로 분류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평전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도 그 시대의 청년이었다. 안중근 의사처럼 하나의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 시대에 저항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시를 썼던 것이다. 이 작품을 하면서 시인 윤동주를 측은하게 여기게 됐다. 지금 시대를 사는 청년들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데, 그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글을 쓰는 것뿐이라 부끄러웠던 윤동주는 당시 형무소에서 죽어간 이름없는 조선유학생이었지만 시대가 지나고 나니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큰 감동을 준다. 오래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안쓰럽고 안타까워요. 제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윤동주의 삶에 공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 윤동주 시인께는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같은 문인으로서 공감을 하게 됐다. 나도 제 글에 대해 많은 고뇌를 한다. ‘내가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내가 글을 쓴다고 세상이 변할까’ 등 끊임없이 고민하며 절필과 집필을 반복해왔다. 윤동주의 경우 당시 쓸 수 있는 단어도 한정적이었고, 담을 수 있는 감정에도 한계가 따랐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주옥 같은 글을 남기며 우리를 위로한다. 글을 쓴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 부분에서 많이 공감했다.
 
- 극 중 이선화라는 가상인물이 눈에 띈다. 어떤 과정으로 탄생한 인물인지 궁금하다.
 
▲ 윤동주 시인은 스캔들이 없다. 평전을 읽어보면 ‘윤동주의 하숙집에 이화여전에 다니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아마 그 여학생을 좋아했던 것 같다’라는 추측만 기록돼 있다. 추측이긴 하지만 왜 스캔들이 없었겠나? 혈기왕성한 남학생이 연모하던 여학생 한 명 없었다면 정말 그건 심심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극에서도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 멋진 시인을 흠모하던 여인이 어디 한 명뿐이었을까?
 
- 안중근에 이어 실존인물을 다루는 것이 두 번째다. 같은 문인으로서 안중근을 다루는 것과는 또 다른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 부담감은 똑같다. 안중근과 윤동주의 공통점은 두 분 다 영웅이라는 점, 그리고 인간적 결함이 없다는 것이다. 존경심을 빼놓고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작업의 첫 번째 순서가 존경심을 갖는 것이고 두 번째가 그 분으로 빙의되는 것이다. 솔직히 작가로서의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작가로서 극의 재미를 위해 사실을 미화한다던가 과장한다던가 하는 그런 욕심 말이다. 하지만 위인들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작가의 상상력이 그분들의 업적에 누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절제하고 있다.
 
- 역사적 인물 중 호기심이 생기는 또 다른 이가 있나?
 
▲ 어느새 민족작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영웅>에 이어 이번 작품을 함께 했던 오상준 작곡가에게 이번 작업을 같이 하자고 조르면서 우린 분명 전생에 독립운동가였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그만큼 저는 사명의식을 갖게 됐다. 사실 안중근 의사가 하늘나라에서 윤동주를 만났을 때 나를 소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아름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괜찮더군. 자네도 작품 하나 써달라고 하게’라고 말이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가 다음에는 어느 위인에게 저를 소개할는지는 저도 모른다. 유관순일 수도 있고 김구 선생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예정이다.
 
- 작품에 사용된 윤동주의 시는 어떻게 고르게 됐나?
 
▲ 정말 고민 많이 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시를 다 넣고 싶었다. 시간 관계상 시를 골라야 했던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하지만 첫 장면에는 반드시 <팔복>을 넣고 싶었다.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외친다. 슬퍼하고 또 슬퍼하다 보면 복이 있을 것이니 영원히 슬퍼하겠다는 그 말은 정말 마음 아팠다. 또 다른 시인 <아우의 인상화>도 애착이 간다. ‘자라서 무엇이 되겠냐’는 물음에 ‘사람이 되겠다’는 대답은 서글프다 못해 비참하다. 시인 윤동주는 2012년을 사는 청년처럼 그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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