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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소리와 빛을 통해 권력욕을 사색하다
이연주의 창극 <맥베스 부인>
2012-10-26 10:05:03 2012-10-26 10:06:29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무대를 비우고 소리와 빛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립예술가시리즈의 일환으로 공연되는 이연주의 창극 <맥베스 부인>은 개성 있는 조명 아래 전통소리와 성악을 미묘하게 대비시키며 인간의 권력욕을 사색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 대신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맥베스 부인에 초점을 맞췄다. 맥베스 부인은 권력의지의 화신이다. 권력에 욕심을 내지만 이내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나약한 맥베스와 달리 냉정하고 강인하다.
 
이미 '레이디 맥베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국내외에서 여러 번 연극이나 오페라로 공연된 만큼 창극 <맥베스 부인>의 캐릭터 해석 자체가 새롭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창과 성악을 두루 활용하면서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그려낸 점, 심리변화를 조명으로 세련되게 표현한 점이 이 극을 돋보이게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소리가 부딪혀 만들어내는 질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전통소리인 창이 공연의 주된 재료로 사용된 까닭에 시대와 캐릭터 등도 상황에 맞춰 살짝 변형됐는데, '조선시대의 맥백 장군과 맥백 부인'이라는 설정은 예상과 달리 어색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 자체에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는데다 창과 성악의 소리적 특성이 캐릭터로 설득력 있게 녹아 들었기 때문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맥백 부인 역을 맡은 소리꾼과 세 명의 광대로 분한 성악가들이다. 소리꾼 이연주가 표현한 창의 질감은 맥백 부인의 지독한 권력에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었다. 광대 셋은 맥백 장군을 비롯한 여러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데 성악가 중 테너 양일모의 경우 섬세한 목소리로 맥백 장군의 죄의식을, 바리톤 한진만은 두터운 목소리로 운명을 말하는 점술가의 단호함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이밖에 무대 뒤편에 자리한 밴드는 가야금, 양금, 타악, 첼로를 연주하며 서양음악과 전통소리를 캐릭터와 줄거리에 맞게 적절히 버무려냈다. 
 
미장센 면에서도 동시대 예술로서 창극의 가능성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용상, 병풍, 발 등 최소한의 오브제가 활용된 대신 조명이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조명은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 섬세하게 변하며 극의 흐름을 살려냈다. 맥백 부인이 왕을 살해한 후 죄의식에 시달리는 남편을 대신해 그의 손에 들린 단도를 호위병의 손에 쥐어준 후 이어지는 장면이 특히 압권이었다. 맥백 부인은 붉은 조명 아래에서 붉은 꽃잎을 하염없이 흩날리는데 조명 속에 흩날린 꽃잎은 극이 끝날 때까지 무대에 남아 지울 수 없는 피의 흔적, 죄의식을 대변했다.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죄를 짓고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불안과 위기의식을 안고 사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소재다. 창극 <맥베스>는 외국 고전으로부터 서사적 힘을 빌리는 대신 세련된 무대 위에 우리의 전통소리를 과감히 활용함으로써 동시대 한국관객과의 소통을 꾀한다. 
 
연출·각색 김수진, 음악감독·작곡 홍정의, 작창·소리 이연주, 테너 양일모, 바리톤 서용교, 바리톤 한진만, 안무 최아름, 연주 김도란, 최휘선, 최순호, 이우성, 박혜나. 25~2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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