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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도그우드 캠프에서 그들에게 생긴 일
이라크전 파병된 스코틀랜드 부대원의 이야기 다룬 연극 <블랙 워치>
2012-10-29 15:32:16 2012-10-29 15:34:0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존 티파니가 연극 <블랙 워치>를 연출한 후 뮤지컬 <원스> 연출가로 발탁됐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병된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과 음악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녀의 이야기의 간극이 제법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랙 워치>를 보고 난 후 고개가 끄덕여졌다. <블랙 워치>에는 뮤지컬적인 요소가 많다.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연극이지만 극 중간중간 노래와 음악, 군무가 들어가면서 관객의 귀와 눈을 쉴 새 없이 자극한다.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은 이제까지 무려 40개 도시를 돌며 <블랙 워치>를 상연했다. 이 연극이 큰 인기를 끌어모았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이라크전 파병이라는 첨예한 이슈를 지루하지 않게 다뤘다는 점일 것이다. 이 공연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오가며 이라크전에 파병된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특수부대 '블랙 워치'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담아낸다. 
 
관객석은 서로 마주보는 형태이고 무대는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가로로 긴 이 무대의 양쪽 끝에는 철제로 된 가설장치가 세워졌다. 양쪽 끝의 가설무대는 망루나 초소의 관물함 등으로 활용되며 거기에 걸려 있는 TV모니터 몇 대, 천막 등에는 시시때때로 외부감시 영상, 프리미어리그 축구 영상, 포르노 영상 등이 투사된다.
 
무대는 분명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자아내지도 않는다. 사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넓이를 고려할 때 다소 왜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전쟁통과 술집의 광경을 담는 무대가 장대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무대의 가로 길이를 약간 줄이거나 좀더 작은 크기의 극장에서 공연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혔으면 어땠을까 싶다. 공간이 너른 탓에 배우들의 목소리에도 지나치게 울림이 컸다.
 
소문만 못했던 무대보다 오히려 독특하게 와닿은 것은 대도구의 활용방식이었다. 현재의 공간인 술집과 과거의 공간인 이라크전 당시의 도그우드 캠프를 연결하는 고리로 특이하게도 당구대가 활용된다.
 
작가가 퇴역군인을 인터뷰할 당시 '이라크에서 마지막으로 대기하고 있을 당시 숨어 있던 왜건이 여기 술집의 당구대만했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평범해 보이던 술집의 당구대 밑에서 갑자기 군인들이 나오고 극의 장소는 자연스레 도그우드로 넘어가는 식이다. 사소한 부분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극의 중요한 장치로 활용한 덕분에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극적 논리도 탄탄해졌다.
 
이밖에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다. 공연팀은 3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전투부대 '블랙 워치'가 최근 수년 사이에 뚜렷한 명분도 없이 외국의 다양한 전투들에 투입됐다는 것을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한 명의 사병을 나머지 다른 병사들이 마리오네트처럼 들고 메치며 다양한 종류의 전투복을 계속해서 갈아 입히는 장면은 부대의 자부심이 어떻게 스러져 가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공연의 미덕은 진정성 엿보이는 스토리텔링에서 발생한다. <블랙 워치>는 작가와 부대원 간의 인터뷰 형식을 통해 부대 전체의 이야기를 아우르면서도 파병된 군인 개개인을 조명한다.
 
극 초반에는 스코틀랜드 부대 특유의 자부심이 강조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특별한 대안이 없어 군대를 선택한 개개인의 모습들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동질감이 강한 지역 주민들과 함께 군에 지원해 국가가 아닌 소대와 전우를 위해 싸우려 했는데 눈앞에서 별 의미 없이 친구들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마주한 이후 이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2009년 올리비에 어워즈 외에 여러 개의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다루면서도 연극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품이다. 영화로 치면 황금사자상보다는 아카데미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평보다는 오히려 '진정성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작품'이라는 게 보다 적절한 평가일 듯하다.
 
작 그레고리 버크, 연출 존 티파니, 출연 카메론 반스, 라이안 플레처, 스캇 플레처, 앤드류 프레이저, 로버트 잭, 스테판 맥콜, 아담 맥나마라, 리차드 랜킨, 크리스 스타키, 가빈 존 라이트, 존 윈체스터, 핀레이 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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