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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 맞는 남과 북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남, 알맹이 없는 ‘통일준비론’ 되풀이…북 표준시 변경으로 ‘시간마저 분단’
임기반환점 앞둔 박근혜 정부 전반기 남북관계 돌아보니
2015-08-09 09:51:58 2015-08-09 10:28:35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을 맞는 남과 북이 ‘분단 극복’의 길이 아니라 상호 이질성과 원심력이 커지는 쪽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역사적인 과제를 외면한 채 양측 모두 명분 싸움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는 25일 임기 반환점을 도는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인 남북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나 선언만 남발하며 임기 전반기를 허송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 등을 쏟아 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온 ▲탈북자·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대북 응징’을 목적으로 내려진 5·24 조치 해제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정부는 대북 전단은 ‘표현의 자유가 있어 단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5·24 조치에 대해서는 ‘천안함 문제에 대해 남측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남북 대결에서 대화로 가는 모멘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2월 남북 고위급접촉이 이뤄져 이산가족 상봉과 상호 비방·중상 중단 문제를 협의했고, 그로부터 8일 후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그해 10월에는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한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권력 실세 3인방이 남측을 방문해 2차 고위급접촉을 열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처럼 마련된 대화의 기회들은 번번이 무산됐다. 대북 전단을 금지해 달라는 북측의 요구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남측의 입장이 충돌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대화 기회를 살려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북의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5·24 조치의 예외로 명맥을 유지해온 개성공단은 정세의 ‘외풍’에 직접 노출되며 출렁거렸다. 2013년 4월부터 6개월가량 공단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고, 가동 재개 후에도 임금인상 문제 등으로 상시적인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대화는 열릴 기미조차 안 보이고, 추가적인 이산가족 상봉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활용하겠다는 속내를 여러 차례 보이면서 그렇잖아도 부족한 남북 간 신뢰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대선 당시의 ‘댓글 공작’이 사실이 드러나 수세에 몰린 국가정보원이 2013년 6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한 일이 대표적이었다. 그런 일을 겪다 보니 북한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설이나 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설 등이 나와도 국내정치적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국정원의 시도로 해석됐고, 남북관계는 골병이 들어갔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 역시 공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 참석해 발표한 축사에서 “오늘은 우리 모두가 평화통일을 이루고 실질적 통일 준비로 나가고자 했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이미 시범운행을 한 경의선과 동해선을 공식 개통하기 위한 남북대화는 하지 않고 경원선 남측 구간만 복원하는 일을 ‘실질적인 통일 준비’로 규정한 것은 박 대통령이 아직도 남북관계 진정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또 “남북협력을 통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는데, ‘남북협력은 북한에 시혜를 주는 것’이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기공식장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탈북자 어린이와 나눈 대화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와 더불어 지난 6일 박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담화에 남북관계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는 점, 북한을 방문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대북 메시지를 들려 보내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경축사도 크게 기대할 것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간 그래왔듯이 알맹이 없이 선언적인 내용만을 담을 뿐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제안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성사시켜 현안을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기로는 북한 김정은 정권도 마찬가지이다. 광복 70주년 기념일인 오는 15일부터 남측과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간을 쓰겠다는 지난 7일 북한의 선언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표준시를 빼앗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향후 ‘남북연합’ 성립과 같이 통일로 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을 때 남북이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통합의 구심력을 높일 수 있는 표준시 변경 카드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써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분단 70년이 되면서 남북의 시간마저 ‘분단’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또, 명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앞으로 남과 북의 ‘표준’을 통합하는 문제에서부터 개성공단 출·입경, 항공관제, 금융거래 등 크고 작은 남북교류에서 불편함이 초래되고, 나아가 남북의 이질성과 원심력을 키우는 결정일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백마고지역에서 열린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기공식에 참석해 침목에 서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침목에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통일과 새로운 미래개척!”이라고 썼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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