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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역사와 허구 사이 마침내 드러나는 '금지된 비밀'
2015-11-13 06:00:00 2015-11-13 06:00:00
소설 중에 일제 강점기 시절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주로 영웅적 투쟁을 한 인물에 관한 거대서사가 쓰여지곤 하지요. 그런데 이런 흐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쓴 소설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번 '뒷북' 코너를 통해 소개할 책, 김다은 작가의 <금지된 정원>입니다.
 
◇일제 치하 개인의 삶과 존재에 주목
 
작가는 소설에서 조선의 운명이 걸린 땅을 놓고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심리적인 전쟁을 그립니다. 소설 속 '금지된 정원'이란 단순히 사람의 발길을 금하는 곳이 아니라 주인이 아니면 생기를 얻을 수 없는 특이한 명당을 의미합니다. 같은 땅이라도 진정한 주인이 차지할 경우 명당 중의 명당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흉지 중의 흉지가 되는 이 땅의 '금지된' 비밀을 누설하는 게 작가의 의도라고 하는데요. 소설 속에서 총독은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기 위해 국운이 걸린 땅을 차지하길 원합니다. 반면에 조선 최고 실력자인 김 지관은 지관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총독에게 명당을 찾아 주어야 할지 아니면 조선인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흉지를 찾아 주어야 할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인데요.
 
이 과정에서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대신 다양한 인물 군상을 엇비슷한 비중으로 소개하는 한편 소제목 또한 각 인물의 이름들로 지은 점이 눈길을 끕니다. 소설에서는 일본에서 파견된 조선 총독, 일본 관료, 조선의 풍수사, 요리집 주인, 통역사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식민지 조선을 바라봅니다.
 
작가는 이렇게 여러 인물들을 복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소설이 대의에 밀리지 않고 개인의 존재방식을 복원하게 하려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소설은 다양한 인간의 존재 방식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특이한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존재 방식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인데요. 작가는 국가 간 전쟁에서 그 대의 때문에 자칫 묻힐 수 있는 개인들의 고통을 선명하게 제시해 보여줍니다.
 
◇이 책의 가치는?
 
이 소설은 역사를 바탕으로 한 팩션입니다. 소설 속에는 실제 존재했던 많은 지명과 건축물들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고종 황제가 등극하고 제국을 선포한 곳인 원구단을 헐고 난 자리에 일제가 세웠다는 조선철도호텔, 본래 조선 후기 헌종 임금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은 것으로 순화궁이라 불리다가 요릿집으로 바뀌고 또 나중에는 여전도 회관으로 바뀌었다는 태화회관 등이 그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중요한 사건들도 대부분 사실이라고 하는데요. 총독이 부임하면서 경성역에서 폭탄공격을 당한 것이나, 조선총독부 뒤쪽에 총독이 자신이 살 새 관저를 짓기 위해 명당을 찾아 헤맨 것도 사실인데요.
 
이같이 역사를 바탕으로 픽션을 창조해낸 것과 관련해 김다은 작가는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느냐를 이해하면서 소설 읽는 즐거움(심지어 고통)을 누리는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 실제 역사 사건에 독자가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금지된 정원>에 등장하는,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한 선택을 하는 민초들의 생생한 삶에서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듯하네요.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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