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년 기획)한국산업, 제조업 프레임만 고집…플랫폼이 미래산업 지배한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 중 '산업간 경계 허물어져'…융복합 전환에 생태계 구축 시급
2016-05-11 07:00:00 2016-05-11 07:00:00
[뉴스토마토 남궁민관·김진양기자] "토요타가 하청업체가 된다면?"
 
일본의 3대 경제지 니케이비지니스는 지난해 5월 특집판을 통해 일본 제조산업에 충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토요타마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시점에서 전통적 제조업 프레임에 갇힌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이미 글로벌 산업의 주도권은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소프트웨어(SW) 플랫폼 기업들로 옮아가는 모양새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3차원(3D) 프린터, 스마트카,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기존 제조업의 붕괴를 가져올 미래산업이 태동한 데다, 이 과정에서 산업간 경계도 허물어졌다. 피아 구분도 없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각 국의 정부들도 정책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산업전쟁에 뛰어들었다.
 
우리의 현주소는 그야말로 비상이다. 노동에 기대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포드주의를 벗어던지지 못했고, 산업화를 이끌었던 중화학 공업에 대한 의존도 여전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 기술력까지 확보하며 일부 산업에서는 우리를 추월했다. 경영활동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제2의 소니, 제2의 노키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부는 거대한 변화에 대한 위기감도, 고민도 없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 몰려온다
 
"지금까지 살아왔고 일해왔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획기적으로 다를 것이다." 
 
전세계 정·재계 오피니언 리더들과 석학들의 모임인 세계경제포럼(WEF) 창시자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올해 연차총회의 주제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했다. 과거 산업혁명이 전세계 경제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것처럼 모든 산업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발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WEF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디지털과 바이오, 물리학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 융합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부상하고 기존 플레이어들도 창조적 파괴로 혁신을 추구하게 된다. 변화의 물살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과 국가는 생존 게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이어진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올 초 출간한 '경계의 종말'이란 책을 통해 "수십년 동안 지속돼 왔던 수많은 경계가 희미해졌다"고 진단했다. 산업과 하위부문이 서로 수렴하면서 20세기 초반 규정되고 체계화된 경계의 명확한 선이 흐려졌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경계가 와해되는 상황에서 기존 업계와 동종 업체만을 살펴봐서는 위협을 빠르게 인지하거나 기회를 찾을 수 없다"며 제조업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 주목하길 제안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4차 산업혁명이 이끌 제조업의 가치 변화는 기존 '노동과 효율'에서 '지식(아이디어)과 기술'로의 이동이다. 기존 제조업이 노동력과 효율을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 체제가 주도했다면, 향후에는 3D 프린터와 IoT 등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기반으로 제조의 플랫폼화, 산업간 융합이 전면에 설 것이란 분석이다.
 
 
먼저 3D 프린터는 기존 제조업의 제조·생산공정 자체를 뒤바꿔놓을 핵심 기술로 꼽힌다. 시설설비 등 초기투자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제조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맞춤형 소량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그간 대기업 중심으로 펼쳐진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의 해체를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IoT 기술 역시 제조의 플랫폼화를 통해 대기업 주도의 제조 생태계 혁신을 유도한다. 스마트공장, 제조연구실(Fab-lab) 등 제조의 플랫폼화는 주문제작, 틈새시장 확대와 더불어 생산과 물류 등 원가 중심의 부가가치 축소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 대기업이 완제품 수출시장 개척과 대규모 투자를, 중소기업은 부품 공급과 관련 투자를 분담하던 기업간 협력 패러다임의 변화가 뒤따르게 된다. 대기업은 개발과 마케팅을 위한 플랫폼을 구성해 운영하고, 중소기업은 플랫폼에 참여해 제품 개발 초기부터 협력하는 형태가 보편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한국 제조업 퍼스트무버 전략' 보고서를 통해 "결국 산업, 기술, 시장, 가치사슬 등에서 기존의 구분이나 경계가 파괴되고, 기술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융합과 혁신의 다양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이 현대차, 토요타 등 기존 자동차 업체에서 IT 시스템 업체 혹은 무인차 핵심기술 보유 업체 등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경쟁력의 핵심은 '독점'이 아닌 '공유'
 
미국, 독일, 중국 등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제조업 체질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2년 '미국 제조업 재생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 구축을 본격화했다. 제조혁신기구(IMI)를 전국 15곳에 설치하고 제조분야 원천 및 사업화 기술 개발과 지방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반을 다졌다. IMI가 개발한 기술과 지식을 전국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제조혁신네트워크(NNMI)도 마련했다. 
 
독일의 경우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전략으로 2006년부터 추진되던 '하이테크 전략 2020'에 2011년 ICT 융합을 통한 제조업 강화 전략 '인더스트리 4.0'이 더해졌다. 모든 생산 공정, 조달 및 물류, 서비스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스마트공장' 구축을 목표로 IoT, 사이버 물리시스템, 센서 등의 기반 기술 개발과 생태계 확산에 집중한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ICT, 에너지, 바이오, 첨단설비제조, 신소재, 전기차 등 신산업 분야 연구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내세웠다. 
 
반면 우리나라는 방향 설정조차 오락가락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사물인터넷 수요 및 시장동향' 보고서를 통해 현재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IoT 정책에 대해 ▲지나친 신기술 지향으로 민간 비즈니스 및 수익모델 개발 및 자생적 생태계 구축 미흡 ▲오프라인 위주 규제체계 및 보안관련 규제로 새로운 IoT 서비스 출시를 위한 근거법령 미비 ▲국내 기업의 공급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사업 추진으로 파급효과 미흡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술 공유 측면에서 대기업들의 소통 노력도 절실하다.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산업의 융합을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중소기업들과 공유해 협력과 상생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애플이 수많은 개발자들과 앱 생태계를 구축, 아이폰을 내놨을 때 그 개념조차 이해 못했던 것은 '독점'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전기차의 대명사로 떠오른 테슬라의 앨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6월 특허공개를 선언하며 "기술적으로 앞서나가는 것은 특허 보유와 상관없다"며  "가장 뛰어난 기술자를 끌어오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달렸다"고 말했다. 전기 구동장치와 동력 전달장치 등 보유한 전기차의 핵심 기술 특허를 공개하면서도 "전기차 산업 발전을 촉진할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규정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남궁민관·김진양 기자 kunggi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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