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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순 이사장 "안전 제도·기술적 수준 높지만 안전 문화는 뒤져"
"선진국서 산재사고 생기면 사업장 생존 자체 어려워"
"우린 아직도 구명줄 없이 고소작업…기본도 안 지켜"
2016-05-16 11:00:23 2016-05-16 15:00:16
[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화학공학과 화학교육을 전공한 화학물질 전문가다. 최근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메틸알코올 중독사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이사장은 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및 공과대학 학장, 안전보건공단 비상임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산업안전보건 분야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전문성을 쌓았다. 2014년 10월부터는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맡아 산재사고 사망만인율을 끌어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산재율과 사망만인율은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16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이 이사장은 남은 임기 중 공단의 전문성뿐 아니라 안전의식을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16일 서울영등포구에 있는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은 이 이사장이 공단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사진/안전보건공단 제공
 
이하 일문일답이다.
 
 
-최근 안전보건공단의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인지. 
 
사고사망만인율(인구 1만명당 산재사고사망자 비율)이 매년 7%씩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늘어나면서 사망만인율 감소세가 꺾였다. 우선 사망만인율 감소세를 지속하는 것이 공단의 가장 큰 현안이다. 또 최근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메틸알코올 급성중독사고가 발생했다. 비록 사망사고는 아니지만 사망사고 못지않게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기에 공단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언급한 것처럼 지난해 말부터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늘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일반적으로 2~3월 중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얼어붙었던 지반이 녹으면서 시설물 등의 붕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이슈가 있었고,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면서 경제·사회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했다. 보통 사회·경제적 여건이 급격하게 변화하면 사고가 늘어난다.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거나 고용불안이 가중돼 근로자들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 유독 산재사고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안전에 관한 각종 법규나 제도, 산업재해 관리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안전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차이는 문화가 아닐까 싶다. 선진국에서는 사소한 위험요인이라도 발견되면 그 요인이 시정될 때까지 작업을 안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일단 하고본다. 이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투입되는 비용보다 재해가 발생한 후의 처리 비용이 더 적게 들어간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중대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업장은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 
 
-많은 현장을 방문했을 텐데, 현장을 직접 보면서 느꼈던 점이 많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구명줄을 걸고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선 아무것도 없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다들 베테랑이니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데, 현실은 건설현장 사망사고의 절반이 추락사다. 높이가 2~3m만 돼도 머리부터 떨어지면 숨질 위험이 높다. 또 망치질을 할 때, 구조물 해체작업을 할 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20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은 수가 많고 공사기간도 짧아 파악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재 국토교통부 세움터와 연동한 통합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메틸알코올 중독사고와 관련해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위험작업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하청·협력사업장에 대한 관리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두 가지 정책을 병행 중이다. 첫 번째는 원청업체가 협력업체에 위험작업을 맡길 때 교육이나 정보제공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용부와 우리가 함께 추진 중인 공생협력프로그램인데, 원청업체(모기업)가 협력업체의 유해위험요인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우수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올해에는 900개소 이상의 모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협력업체만큼 산재사고 위험에 취약한 곳이 영세사업장이다. 오히려 사업장 수가 많아 협력업체보다 관리가 어려울 텐데, 공단에서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나. 
 
메틸알코올 사고를 기점으로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전체 사업장이 237만개 정도 되는데, 고용부와 공단의 인력만으로 전부 들여다보고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안만이라도 매뉴얼로 만들고 있다. 또 이 매뉴얼을 자치단체와 직능단체, 위탁대행기관을 통해 전 사업장에 배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고용부와 공단 직원들이 16만6000개소를 직접 관리하고 있고, 위탁기관을 통해 43만6000개소를 관리한다. 나머지 사업장에 대해서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 민간단체를 활용하고 있다. 
 
-이사장 께서는 현장 방문이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어떤 현장을 방문하는지 궁금하다. 
 
사망자가 2명 이상이거나, 사망자를 포함한 사상자가 3명 이상인 현장을 찾는다. 메틸알코올 급성중독처럼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현장을 방문한다. 내가 방문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공단이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또 관련 기관장이 현장을 방문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실무자들이 보고나 설명을 위해 현장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같은 재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이사장 임기가 절반 정도 남았는데, 남은 임기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리스크 항상성이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의 안전장치가 늘어나면 리스크는 줄어드는데 운전자는 그만큼 과속을 한다. 결국 더 안전해져도 리스크는 기존과 같아진다. 또 정부나 기업, 언론에서 계속 안전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위험을 잊게 된다. 오죽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일부 일본인들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이나 제도만큼 중요한 게 의식이다. 특히 우리처럼 안전을 이끄는 사람들은 모든 부문에서 안전을 실천하는 사람보다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래서 남은 임기 동안 공단의 전문성뿐 아니라 의식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싶다.
 
대담=권순철 경제부장 
정리=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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