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사람)"그림책은 애들만 보는 게 아닙니다"
권종택 보림출판사 대표 "그림책은 '순수문학'…쉽지만 깊이 있어"
입력 : 2016-07-06 12:00:00 수정 : 2016-07-06 12:00:00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것이다.'
 
최근 서울 상수동에 문을 연 그림책 카페 '노란우산'에서는 이 글귀가 손님들을 맞는다. 카페 한 가운데 큼직하게 써 놓은 것도 모자라 카페 밖 대형 현수막에도 같은 글이 쓰여 있다. 
 
"그림책은 애들만 보는 책이 아니"라는 권종택 보림출판사 대표의 철학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문을 연 노란우산은 국내에서 40년간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해온 보림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지난 2002년 뉴욕타임즈의 '올해의 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됐던 류재수 작가의 동명의 책에서 이름을 따왔다. 페이퍼컷팅 기법 그림책으로 만든 조명상자나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그림책을 담은 액자 등 카페 곳곳에 있는 오브제를 보면 그림책은 전 세대가 보는 책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지난달 24일 노란우산 카페에서 권 대표를 만났다. 흰 수염에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모자를 쓰고 있던 권 대표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천진함까지 느껴지는 듯한 인상이었다.
 
권종택 보림출판사 대표. 사진/원수경기자
보림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그림책 전문 카페 '노란우산'의 실내 모습. 사진/보림출판사
 
"굳이 홍대 앞에 카페를 만든 건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어른에게도) 감동을 주는 그림책이 참 많은데 온라인 공간에서만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와서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게 운영비도 비싼 홍대 앞에 카페를 낸 겁니다. 그림책은 태어나서는 엄마가 읽어주는 것을 보고, 부모가 돼서는 아이에게 읽어주고, 만년이 돼서는 자신을 위해 읽게 되는 전 세대가 같이 보는 책입니다."
 
보림출판사는 최근 몇년 새 이른바 어른들이 읽는 예술성 높은 그림책을 많이 만들고 있다. 최근 출판한 '터널의 날들'이나 '구두점의 나라에서'도 그 연장선이다. 이 같은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 권 대표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로서 그림책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대중에게 늘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담겨있었다. 
 
"2010년부터 예술성과 미학성이 특별히 우수한 책을 시리즈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예술적 가치를 이야기하려면 정말로 그런 가치가 있는 책을 모아서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림책이 정말로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 할지라도 좋은 그림책을 만들고 소비자가 그걸 알아주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죠. 오페라 '나비부인'과 '백조의 호수'를 그림책으로 냈는데 그림책은 이런 전통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새롭게 만들 수 있어요.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려 하는 책들은 시장성에 관계없이 만들었습니다."
 
일부 실험적인 그림책은 실제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화와 수채화로 완성한 정교한 드로잉이 담긴 '나비부인'의 경우 당초 1000부 판매도 힘들 것이라 예상했는데 2000부 이상이 판매됐다는 설명이다. 5만원짜리 비싼 그림책 치고는 꽤 선전한 것이다. 
 
권 대표는 그림책에는 짧은 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문학 쪽을 봤을 때 소설 한편을 읽고 작품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대여섯시간 혹은 며칠이 필요합니다. 그에 비해 그림책은 훨씬 쉽고 빠르죠. 그렇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글과 그림을 동시에 받아들이면 감동이 배가 되고 더 깊어집니다. 큰 감동도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접근해 감동받고 사는 것도 좋은데 그림책이 그 역할을 해주는 거죠."
 
순수 문학인 그림책이 다른 장르에 비해서 홀대받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 출범한 그림책협회에 회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림책은 30년 정도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창작 그림책들이 전 세계에서 좋은 상도 많이 받고 수출도 많이 했습니다. 아마 저작권 수출로만 따진다면 소설 등 다른 책을 다 합쳐도 그림책 종수만큼 안 될 거예요. 최근 한 소설이('채식주의자') 문학상을 받아 20여개국에 저작권을 수출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영화로 치면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 같은 'BIB(세계 3대 그림책 상)'에서 그랑프리도 받았는데 어디서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순수 문학을 수출하는 것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해요. 또 사회적·대중적 인식도 개선돼 그림책 작가들이 좀 더 대우받았으면 합니다. 그림책은 내면을 성장시키는 인문교양서고 순수문학이자 예술서인데 이게 아이들의 학습서, 실용서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권 대표는 앞으로 노란우산을 그림책의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다는 계획이다. "노란우산 안에서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어제도 여기서 '더미북(초안) 데이'를 열었어요. 그림책 작가 지망생들이 만들어 온 더미북을 편집자들이 보는 자리였죠. 지망생들은 편집자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데 그게 사실 쉽지 않거든요. 여기서 그림책 커뮤니티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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