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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마당 너머 집안에 있었다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2016-08-18 08:52:10 2016-08-18 08:52:10
중2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절친한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에 흰 마스크를 쓰고 왔다. 한창 멋에 관심 많았던 시기. 좀먹은 냄새가 풍기는 큼직한 마스크는 아무리 뜯어봐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패션이었다. 친구의 이상한 고집은 결국 입술과 뺨에 난 흉이 드러나며 끝이 났다. 쇄도하는 질문에 관한 그의 해명은 웃는 낯만큼 처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오르다 발을 헛디뎠어.”
 
신기하리만치 순진무구한 반응이 이어졌다. “웬 감나무? 그보다 조심하지 그랬어“ 와 같은.
 
개중의 누군가는 친구의 변변치 못한 핑계를 들춰내기 싫어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몇몇에게 두터운 의리를 느끼면서도 그의 흉터를 마스크로 가려야 한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동의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섬뜩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것은 명백한 손찌검의 흔적이었으니까.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세상은 분명 좋아졌다. 매 맞는 아이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아동학대 판정수가 예년에 비해 3.231건이 늘었고,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빅카인즈 ‘아동학대’ 키워드 검색은 더욱 뚜렷한 변화를 보여준다. 최근 5년 사이 10배 가까이 폭증한 기사 언급도가 눈에 띈다.(2011년 약 500 건 → 2015년 약 5000 건) 아들, 딸 키우는 마음은 만국공통어라 했나. 뉴스에 비치는 낯선 아이들의 멍든 몸뚱이에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릴 것 없이 분노한 결과다.
 
자료/보건복지부 2014 전국 아동학대현황 보고서
 
그럼에도 교실에는 아직 한여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왜일까. 올해 5월부터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위기 아동 패턴을 분석, 학대가정을 가려내는 기술도 도입되었다고 한다. 정기 예방접종 기록이 장기간 비어 있는 아이, 분만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 등을 분석한다. 똑똑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왜, 일까.
 
작년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반기 현황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전체 신고 수 5,432명 중 학대행위자 ‘부모’의 압도적인 수치가 눈에 들어온다.(4,439건, 약 81%) 아동학대 발생장소 또한 기대와 다르지 못했다. 빅데이터가 잡아내지 못하는 범인은 아직도 감나무 너머 집안에 있었다. ‘학대아동의 집’. (4,485건, 약 82.5%)
 
전체 신고 건수 중 가장 많은 학대 유형이 ‘신체 학대’(890건)이 아니라, ‘정서 학대’(1,003건)이라는 사실은 뉴스에 등장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반영한 결과다. 원망적·거부적·적대적 또는 경멸적인 언어폭력, 형제나 친구 등과 비교, 차별, 편애하는 행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집을 싸서 쫓아내는 행위 등. 정서 학대에 포함되는 사례를 읽다 보면 그야말로 ‘아슬아슬하다’. 신체 학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행위, 도구를 사용하여 신체를 가해하는 행위…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맞을 매를 직접 사 오던 아이들도 있었다.
 
훈육 차원에서 동반되는 ‘거친’ 언어, ‘사랑의 매’는 모두 정확히 학대 행위다. 그러나 정기 예방접종을 받고, 나이에 맞는 교육과정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아이들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통금 시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매를 맞은 아이들은 “우리 집이 좀 엄해”라고 멋쩍게 이야기할 뿐이다. 
 
그뿐인가. 가장 가까운 일상에 자리하는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용인되곤 한다. ‘부모니까’, ‘애 키우는 마음으로’. 죄인 된 마음으로 매를 들고, 지나친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모습은 절절한 모성, 부성으로 이해된다. 우는 아이에겐 매가 약이기 때문에, 자녀의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불러오는 저릿한 통각, 자극적인 말을 빌린다. 
 
대법원 판례는 아동학대를 ‘아동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훈육의 목적이라도 체벌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객관적 타당성을 잃었을 경우’라고 판시하고 있다. 사회통념상의 객관성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들이다. 사랑이라, 약이라 부르는 매를 맞는 피해자는 사회통념을 지고 감나무를 오르고 있다. 진정 사랑이라면 친구는 왜 좀먹은 마스크를 준비해야 했을까. 폭력을 숨겨야 할 사랑으로 그려내는 문화에서 광기를 본다.
 
사진/바람아시아
 
 
 
정윤하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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