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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마을 찾기
2016-08-31 11:22:19 2016-08-31 11:22:19
페인트칠이 벗겨진 회색 건물들 사이에 골목길이 있다. 검은색 쇠창살이 달려있는 붉은 벽돌로 된 빌라, 전단지가 잔뜩 붙은 전봇대, 화분 옆 쓰레기들, 스프레이로 X자 그려진 건물,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이주개시 알림문, 사람 사는 흔적을 쫓다 보면 조그만 간판이 하나 보인다. 아현동 주택골목의 주방 같은 가게, ‘언뜻가게’다. 재개발을 앞둔 이 곳에서 천휘재, 천명재 형제가 운영하는 언뜻가게를 찾았다. 
 
언뜻가게 외부. 사진/남경지
 
-언뜻가게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재건축이 예정된 동네 골목에 언뜻 보면 식당 같고, 언뜻 보면 카페 같고, 언뜻 보면 마을회관 같은 가게에요. 식사도 팔고, 음료도 팔고 독서모임도 하고 전시도 해요. 가끔 세미나도 열고 있어요.
 
-독특한 공간인거 같아요. 처음 오픈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희 집이 옆 건물이에요. ‘아현동쓰리룸’이라고. 거실이 있는 집에 뮤지션들이 살다보니까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서 밥도 같이 먹고 소규모 공연 같은 걸 열었어요. 그걸 꾸준히 하다보니까 처음엔 낯설었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몇몇 친구들이 집은 폐쇄적이니까 오픈된 공간을 같이 만들어서 운영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8~9명 친구들이 돈과 힘을 모아서 공간을 만들었죠. 원래는 이곳 말고 다른 지역을 알아봤는데, 여기가 임대료가 저렴하고 꽤 오래 비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 언뜻가게가 생기게 된 거죠.
 
-형제가 운영하신다고 하셨는데, 사이가 좋으신가봐요
 
저희 별로 안 친해요(웃음)
 
- 이 근방은 주택골목이던데, 이웃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반반 인거 같아요. 담배 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고, 시끄럽다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관심 없는 분들도 계시죠. 반면 마을을 원하는 사람에겐 좋은 공간이 생긴거죠. 요즘 특히 서울의 삶을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집 인근에서 관계를 맺는 게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집 혹은 살고 있는 공간에 잠자는 곳 이상의 의미가 없다던가. 근데 사실 공간을 통해서 마을이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퇴근길이나 골목을 지나갈 때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가게 때문에 생기는 거니까. 언뜻가게를 좋아하는 분들한텐 그런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또, 이 골목이 되게 어두운 곳인데 저희가 간판 켜놓고 불을 키고 있으니까 골목 안에서 하나의 안전망이 되는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거죠. 
 
-하나의 마을 공간이 된 거네요?
 
동네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비슷한 나이또래 사람들도 알게 되고 친해졌죠. 그러면서 마을 공간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오다가다 편히 놀다가기도 하고 물 한잔 먹고 가기도 하고요. 굳이 뭘 사지 않아도 말이에요. 남들이 볼 때는 흥미 있고 재미있어 보이는 공간일 수도 있는데, 사실 별건 없어요.(웃음) 
 
-서울에 사실 이런 공간이나 마을을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게다가 신촌, 이대는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인데 이 근방인 아현동에 마을 공간이 생긴 게 신기한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가능했나요?
 
사실 성공하진 않았어요. 하나의 마을에서 ‘이런 사례도 있었구나’ 이 정도라고 생각해요. 동네가 상업지역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거든요. 오래된 곳이라 어르신들이 많고 집값이 싸니까 젊은 사람들도 더러 있고요. 우리랑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뭉쳤다고 볼 수 있죠. 취미나 다른 공간을 위한 연습 정도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일반적인 원룸에 살았다면 우리도 그 공간을 잠자는 곳으로만 생각했을 거에요. 그 인근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겠죠. 거실이 있는 공간에서 살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됐죠. 그 사람들이 있어서 만들어 진거에요. 공간을 운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인근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돼요. 하기 싫어도. 그런 관계가 생겼을 때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마을사랑방 역할이 되는 것 같아요.
 
언뜻가게 내부. 사진/남경지
 
- 재개발로 이사 가신다고 하셨는데,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이사 가신 곳에서도 비슷한 가게를 운영하실 건가요?
 
다른 곳에 가서도 같은 형태로 할 건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들어요. 왜냐면 여기는 사람들이 다 흩어지기 때문에 가게를 운영할 목적이 사라지게 되잖아요.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까 마을을 위한 공간이 된 거지, 애초에 목적 자체가 마을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마을 공간 재밌고 좋은데 실속이 없어요. 여기는 월세나 임대료가 싸서 가능한데 다른 곳은 또 비싸잖아요. 자본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조금 힘들죠. 어쨌든 운영을 하려면 수익이 필요한데 영업과 마을공간역할 결합이 되게 힘들거든요. 잘 섞이지 않아요. 또 서울 올라와서 처음 우리 동네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 곳인데 이곳도 결국 해체되니까요. 재건축은 분노하는 지점도 분명 있죠.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서 마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에요.
 
-씁쓸하네요. 
 
뭐든지 처음에는 다 힘도 있고 재미도 있죠. 마을공간이 어려운 이유가 뭐냐면, 이런 마을공간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이 되게 재밌어 해요. 근데 재밌는 것도 하루이틀인거죠. 저희도 처음 몇 달 동안은 동네 밥 모임도 있었고 북적북적했어요. 점점 뜨문뜨문해지는 거죠. 다들 일상이 있으니까요. 
 
사진/남경지
 
서울시는 2012년부터 주민들이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언뜻가게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인위적인 마을공간이 아니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을 사랑방이다. 재건축으로 인해 언뜻가게는 25일 마지막 모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오래되고 낡은 마을은 재건축으로 사라지고, 깨끗하고 볼거리가 있는 마을이 생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아닌, 관광객이 올 수 있는 어딘가 인위적인 마을. 쫓겨난 이들은 마을에 살지 못한다.
 
 
 
남경지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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