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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빈수레'에 그친 상법 개정안
2017-04-11 13:17:03 2017-04-11 13:46:03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한민국이 혼돈에 빠졌다. 드러난 문제는 산더미인데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경제민주화 법안 등 개선책들은 대선 블랙홀에 빠졌다. 각 정당이 대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면서 국회도 개점휴업이다.
 
심판은 이제부터다. 숱한 의혹과 심증으로 재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커질대로 커졌다. 대통령 등 권력자의 단순 강요인지, 재벌과 권력의 유착인지 법정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음에도, 일부 대선 후보들은 벌써부터 사면을 얘기한다. 촛불로 대변되는 분노한 민심에 대한 역행이다. 고비는 삼성 재판이다. 창립 이후 총수가 처음으로 구속되면서 삼성은 결사항전의 각오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 삼성이 준비한 방어논리는 특검의 창에 맞설 단단함으로 무장했다.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공판이 열렸다. 박영수 특검은 이번 사건이 국민의 힘으로 법치주의와 정의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재판에 의미를 부여했다. 특검은 삼성 측 피고인들이 공모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 각종 현안에 관한 부정청탁의 대가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213억원의 지원 약속과 77억원 지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 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79억원 출연 등 합계 298억원을 뇌물 공여로 봤다.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을 위해 허위로 내부품위서를 작성하는 등 횡령죄와 재산국외도피죄도 적용했다.
 
이에 맞서는 삼성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대가성이 없는 지원이며, 지배구조 개편 등 삼성의 여러 사업활동은 지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특검의 공소 내용이 증거가 아닌 예단과 선입견에 기반한 것이며, 추측과 비약으로 구성됐다고 공격했다. 일례로 공소장에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 내용을 직접 대화로 인용한 것과 관련해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 있는지 쏘아붙였다. 어떤 증거로도 대가 합의 및 부정청탁 인정이 불가해 뇌물공여죄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나머지 혐의들도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반론했다.
 
치열한 법리 다툼이 펼쳐지면서 재판부 결정은 속단하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드러난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범죄 유무를 떠나 재벌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삼성의 금품 제공은 명백하다. 지원 절차나 과정이 잘못됐다는 점은 이 부회장도 인정하고 사과한 사실이다. 이사회 의결 과정 없이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설령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결론날지라도 부조리를 묵인해온 잘못이 없지 않다. 글로벌 기업을 자랑해온 대기업들이 뒤로는 권력과 타협, 이해를 도모했다는 사실은 과거 정경유착의 판박이다. 모금은 로비가 되고, 반대급부로 직간접적 정책 수혜를 챙겼으며, 결국 경제는 재벌 위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정당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들은 좌절했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눈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야 했다.
 
정치권에 뿌려진 재벌의 비자금은 정권이 수차례 바뀌어도 근절되지 못했다. 처벌은 약했고, 사과는 형식적이었다. 이번에도 재벌은 사과만 할 뿐, 무엇 하나 물러서지 않는다. 상법 개정안은 재계 반대에 막혀 국회 법사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쟁점법안은 차치하고 민생법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정당들은 이제 대선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수감됐지만, 함께 연루된 재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성난 민심이 자신들을 향할 수도 있다.
 
산업1부 재계팀장 이재영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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