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이야기)블랙리스트 판결 유감
입력 : 2017-08-02 06:00:00 수정 : 2017-08-02 06:00:00
‘조윤선은 무죄, 박근혜는 공범이 아니다’란 게 7월 27일 있었던 법원의 1심 판결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국회에서 증언만 허위로 인정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어 귀가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조윤선 전 장관은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오해를 풀어줘서 법원에 감사하다고 인사했지만,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게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불길한 느낌이 덮쳐 왔다. 2심, 3심에서 가서 조윤선 만이 아니라 김기춘, 박근혜 마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 무죄 선고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만약에 2심, 3심 재판부가 1심의 재판부와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 약 1만 명의 명단을 작성해서 관리하며 정부의 지원에서 배제해왔던 게 블랙리스트 사건의 요지다. 그 1만 명의 문화예술인들은 세월호참사가 발생했을 때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선언 등에 이름을 올렸던 이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사건이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급 자체를 먹으려고 부단히 애를 써왔다. 영화 <다이빙 벨>을 둘러싼 탄압이 대표적이다. 이 다큐 영화 한 편 상영한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를 탄압했고, 영화 배급사를 탄압해서 파산 위기로 몰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해서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신 때의 악령을 불러낸 꼴이다. 문화예술 전 영역에서 검열을 일상화하고, 공포로 억압했던 그 과정을 정상적인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 그런 유신 때 악령을 불러내게 되었던 계기가 세월호 참사였고, 그 전부터 추구했던 좌파 예술인들의 배제 정책이 이 사건을 맞아 본격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부정한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입장들만을 애써서 찾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보수정권의 국정기조에 따라 정책을 지시한 것’이므로 헌법과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는 궤변도 그렇고, 조윤선 전 장관에게 최초의 기획자가 아니며 보고받지 못했고 증거가 부족하므로 무죄라고 본 태도도 그렇다. 수많은 증거가 있다고 제출되었어도 그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애써 외면하고 유리한 증거만을 채택하려고 노력하지 않고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국가폭력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를 제한하기 위한 분명한 법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는 그런 이유도, 법률도 없이 최고 권력자들에 의해서 기획되고 지시되고 실행에 옮겨졌다. 이런 부분을 구체적인 실행을 한 자들만을 실형에 처한다면 권력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도록 허용하게 되며, 헌법이 강조하는 ‘법 앞의 평등’은 빈껍데기의 단순 구호로 전락하게 된다.
 
법원은 대체로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 매우 관대한 판결의 경향성을 보여 왔다. 가벼운 도둑질을 한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엄벌주의적 판결 경향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라면 하나, 빵 하나 훔친 사건에 대해서도 징역 3년형을 선고해왔던 것에 비해서 국정농단 사건의 한 갈래인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범인 김기춘에 대해서 징역 3년형을 선고한 점은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러니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진 비상식적인 판결이 많고, 이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이 설득력을 얻어 있는 이유다.
 
다행히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를 민관 합동으로 구성하여 활동에 들어갔다. 이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서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의 기본을 흔든 중대한 국가폭력이며, 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 확립의 분명한 대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법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남용을 용인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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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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