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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육성정책, 이대로 괜찮나)①자금규모만 늘면 끝?…진짜 '벤처' 길러내야!
'묻지마 창업지원', 브로커만 배불려…'죽음의 계곡' 넘는 3년차도 지원 절실
2017-11-27 06:00:00 2017-11-27 06:00:00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벤처업계에 다시금 온기가 돌고 있다. 정부의 혁신창업 생태계 구축 주창과 그에 따른 대규모 자금 투입 결정 등의 영향이다. 하지만 무조건 자금만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벤처창업과 투자가 단기간에 그치는 '열풍'이 아니라 '훈풍'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벤처기업 옥석가리기와 더불어 기존 벤처 지원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00년 초반 불었던 벤처붐 이후 다시금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은 이번에도 역시 정부다.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에 따르면 향후 3년간 정부와 민간이 매칭하는 방식으로 기술혁신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가 조성된다. 또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과 민간이 함께 20조원 규모의 대출프로그램도 마련해 혁신모험펀드가 투자하는 기업에 지원사격할 예정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벤처기업수는 계속해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벤처 확인 공시시스템 '벤처인'에 따르면 24일 기준 국내 벤처기업수는 3만5095개다. 벤처기업수는 집계를 시작한 1998년 2042개에서 2001년 1만1392개까지 늘었지만 벤처붐이 꺼지면서 2003년엔 7702개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이후로는 10여년동안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정부가 총 30조원의 모험자금펀드와 대출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벤처 생태계도 긍정적 영향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 그러나 정작 업계에서는 자금규모만 키우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라 나온다. 벤처 생태계 조성이 성공하려면 해묵은 과제들의 선결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지원금 사업을 진행하면서 양적 성과에 몰두하는 데서 탈피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정권에서도 창업 관련 정부지원금 사업은 다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관리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초기 벤처기업인 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지원금을 가로채는 전문 브로커로 인한 피해사례가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서울보다는 상대적으로 중앙의 감시가 소홀한 지방에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중심으로 한 창업 프로그램이 많았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창업지도사라고 소개하며 창업 초기기업들을 멘토링하고 정부 지원금 중 10% 정도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된 멘토링은커녕 비즈니스모델을 다 어그러뜨리고 돈만 챙겨가는 경우들이었다"고 전했다.
 
초기 기업들의 약점인 인력난을 이용하는 '체리피커(신포도 대신 체리만 골라 먹듯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것)'도 존재한다. 또 다른 벤처기업인은 "인력난을 겪고 있는 초기 벤처기업에 브로커가 접근해 청년 인턴을 소개해주는 대신 정부가 인턴 채용시 제공하는 지원금의 4분의 1 정도 비용을 가져간다는 제안들이 있었다"며 일자리 지원부문 역시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 벤처기업인은 정부 지원에서 선정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기업인은 "사업계획서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원인이 무엇이고, 수정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선정과 탈락 결과만 받아안게 되는 게 현실"이라며 "결국 지원기업인 자체의 스토리가 되는 경우만 선정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특히 기존 스타트업 창업 위주 정책에 대한 볼멘 소리도 일각에선 나온다. 스타트업 기업 창업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창업한지 3년 이후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고 있는 기존 기업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벤처기업인은 "지원금을 받아 놓고 시제품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 결국 브로커들만 배불리고 있는데 정부는 초기기업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창업 진흥에 힘쓰고 있다"며 "결국 숫자로 드러나는 결과물에 집착한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기술력이 있는 기업도 창업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창업기업의 내실화를 위한 지원에도 정부가 힘을 쏟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벤처기업 지원의 해묵은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원금만 늘어난다고 해서 벤처 생태계가 저절로 살아나지는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 지원사업이 창업 3년 미만에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창업만 권장할 게 아니고 창업 후 어떤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교육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창업자들이 사실 창업을 쉽게 보는 경향도 있다. 창업 이후 매출이나 성장성이 있어야 이후 투자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선배 기업인들과 함께 얘기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에도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계획 발표로 벤처업계에 온기가 돌고 있지만 제2의 벤처붐이 일기 위해선 먼저 벤처지원 시스템 개선 및 벤처기업 옥석가리기 등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진은 중소벤처인과 청년의 기업가정신을 북돋기 위해 열린 한 창업 페스티벌의 모습(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뉴시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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