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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유럽에 있는 봅슬레이 트랙이 초가집이라면 평창은 양옥집 수준"
최태희 대림산업 평창슬라이딩센터 소장 “눈물의 슬라이딩센터…IBSF 관계자 엄지척”
“유럽 검측 관계자 ‘원더풀’ 외친 시공력…평창서 쌓은 노하우 수출 가능”
2018-01-26 06:00:00 2018-01-26 06:00:00
 [뉴스토마토 조한진 기자] ‘한국 최초 동계올림픽’으로 시작해 ‘남북단일팀’구성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2011년 7월 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뒤 수많은 이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며 대회의 성공을 위해 달려왔다. 특히 동계올림픽 경기장 가운데 국내 최초로 지어진 평창슬라이딩센터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등 설매 종목이 개최되는 슬라이딩센터의 시공은 대림산업이 맡았다. 그라나 설계부터 완공까지 위기의 연속이었다. 프로젝트 진행 도중 썰매 종목 일본 분산개최설까지 불거졌다. IOC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관계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경기장 시공의 총대를 멘 야전사령관은 대림산업의 최태희 소장. 주변의 크고 작은 우려 속에서 최 소장과 현장 직원들은 ‘맨땅에 헤딩’을 해가며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슬라이딩센터를 완성시켰다. 선수들은 물론 IBSF 관계자들은 엄지를 치켜 올리며 경기장에 만족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준비에 눈코 뜰 새 없는 최 소장은 “그동안 고생한 것들을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최태희 대림산업 소장이 올림픽 썰매 경기가 열리는 평창슬라이딩센터를 소개하고 있다. 터진 아랫입술에서 그동안의 노력과 올림픽을 앞둔 긴장감이 묻어나는 듯 하다. 사진/대림산업
 
평창슬라이딩센터는 ‘무(모)한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여건이 불리했다. 올림픽 개최 확정 후 2년이 넘도록 첫 삽을 뜨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3년 12월 실시설계 적격자로 대림산업이 성정됐고 이듬해해야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전까지 슬라이딩센터라는 시설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었잖아요. 어떻게 계획을 잡아야 할지,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무도 몰랐죠. 모두가 공부하다 보니 다 늦어진거에요.”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 슬라이딩센터는 하루가 다르게 뼈대를 갖춰 나갔다. 결국 2016년 1월 3일, 12개월 만에 시공이 완료됐다. 앞서 동계올림픽이 열린 캐나다 휘슬러(2010년)와 러시아 소치(2014년)의 트랙 시공은 각각 30개월, 20개월이 걸렸다. 최 소장은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되겠지, 잘못되면 사표 내는 거 아니야?’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어요. 실제 공사가 들어가니 하나부터 열까지 힘들지 않은 일이 없더라고요. 특히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어요. 자재는 어떻게 들어가고 그 기준은 무엇인지, 설계도면을 보고 항상 갈등하고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최 소장은 25년차 교량시공 전문가다. 평창슬라이딩센터에도 교량 기술을 상당부분 적용됐다. 시공은 대림산업 등 우리기술로 완성했지만 트랙 설계는 독일의 PBD가 담당했다. 카이스트에서도 설계가 가능했지만 검증하는 데만 3년 이상이 걸리는 상황이라 고육지책으로 독일 설계 업체를 선택한 것이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트랙을 완공한 원동력을 묻자 최 소장은 주저 없이 ‘자동화’를 꼽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썰매 종목 분산 개최 얘기가 나왔을 때 빨리 슬라이딩센터를 완성하자는 마음이 강했어요. 대통령 보고도 직접 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잖아요. 안되면 회사 망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획기적으로 방법을 바꿨어요. 유럽에서는 배관 등 트랙 공사를 수작업과 경험에 의존해요. 그런데 저희는 컴퓨터 설계와 자동화 공정, 자동용접 등을 이용해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어요. 트랙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이 배관이에요. 특허도 2건이나 출원했습니다.”
 
최태희 대림산업 소장이 평창슬라이딩센터에서 IBSF 관계자들에게 공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대림산업
 
배관 얘기를 하던 최 소장은 “배관 때문에 최대 위기가 왔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썰매 트랙은 암모니아가 흐르는 배관을 통해 얼음을 얼린다. 얼음의 질은 트랙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선수들의 안전과 경기력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비 인증 과정에서 가스가 새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 기술에 신뢰가 없었던 IBSF 관계자들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상황이 더 난감했다. 배관을 정밀하게 설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트랙의 구배와 곡선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은 레이저커팅 기술을 처음 사용하면서 배관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다.
 
“트랙을 만드는 과정에서 IBSF 등은 우리 기술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어요. 2015년 2월 예비 인증을 받는데 펌프 베어링이 깨지면서 엄청 망신을 당했죠.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사고가 터졌으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어요. 6개월 만에 복구를 해서 재검을 받는데 피가 마르더라고요. 외국에 사람도 보내고 메일도 보내고 하루가 여삼추 같았어요. 알면 별게 아니었는데 그 과정이 어려웠죠. 제일 큰 원리부터 하나씩 해소해가면서 고쳤어요. 이 과정을 통해 이제는 썰매 트랙의 달인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올림픽 기간에 얼음 얼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최 소장은 평창슬라이딩센터에서 축적한 기술의 수출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다른 시공 분야도 노하우를 접목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득하다. 대림산업과 최 소장은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중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미 최 소장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을 3차례 방문해 정부 관계자와 현지 건설업체들을 만났다. 견적서를 제출했고, 중국 측에서 ‘오케이’ 사인만 떨어지면 언제든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 소장은 “지금 중국은 우리가 슬라이딩센터를 계획하던 초기와 비슷하다.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슴을 졸이며 4년여를 평창에서 울고 웃은 최 소장은 평창슬라이딩센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라고 정의했다. 총 길이 2018m, 스타트 지점과 도착점의 해발 고도차가 120m로 세계최대인 첨단 트랙을 완성하며 슬라이딩센터 전문가가 됐다는 자부심도 크다.
 
평창슬라이딩센터에서 경기를 할 수 게 되자 유럽 관계자들은 입모아 ‘원더풀’을 외치면서 "평생 트랙을 검측하고 다녔는데 한국의 대림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며 극찬을 했다고 전했다.
썰매 트랙은 토목 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화공학과 열역학은 물론, 건축과 기계도 배워야 하죠. 예로 건축의 공조시스템을 알아야 해요. 이제는 이런 일들을 종합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외국은 조그만 분야만 전공을 해요. 일이 10개라고 하면 일일이 다 물어야 하는 식이죠. 저는 이걸 턴키로 하면서 총괄을 했어요. ‘슬라이딩센터요?’ 이제는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기간 내내 최 소장은 슬라이딩센터에서 비상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슬라이딩 센터의 핵심인 얼음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썰매의 역사를 옆에서 지켜본 그는 평창슬라이딩센터 시상대에 태극기가 올라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최 소장이 꼽은 금메달 후보는 ‘한국 스켈레톤의 간판’ 윤성빈이다.
 
“평창슬라이딩 센터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유럽에 있는 트랙이 초가집이라면 평창은 양옥집 수준이이에요. 평창슬라이딩 센터에서 우리 국가대표가 메달을 목에 걸면 정말 감동스러울 것 같아요. 윤성빈 자주 보는데 몸이 정말 유연해요. 확실히 금메달 딸 것 같더라고요. 고생한 선수들이 평창에서 꽃을 피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루지 등 평창동계올림픽 썰매 종목이 열리는 평창슬라이딩센터. 사진/대림
 
조한진 기자 hj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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