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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흥부’, 너무도 명확해서 오히려 달궈질 수 없는
2018-02-07 09:17:43 2018-02-07 09:17:4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연기력 면에서 결코 뒷말을 들어 본적 없는 배우들이 모두 합류했다. 구전 소설 혹은 설화 소설의 대명사로 불리는 ‘흥부전’을 재해석했다. 시대적 상황과 무언가 합치가 이뤄지는 지점이 강하게 다가올 듯하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진 자와 곤궁한 자’ ‘지배층과 피지배층’에 대한 해학적 코드는 당연지사다. 이건 분명히 물건이 될 듯하다. 사실 이 지점에서만 보자면 영화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자’는 걸출한 또 하나의 사극 혹은 메시지 충만의 덩어리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조근현 감독이 전작 ‘26년’을 만들었단 점만 가늠해 봐도 ‘절반 이상의 성공’은 충분해 보인다.
 
 
 
공개된 영화 ‘흥부’는 무언가 넘쳐 보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얘기 속에서 새로움을 담아내려고 한 노력이 역력해 보였다. 각각의 캐릭터들도 너무나 명확했다. 흥부는 글로 세상을 바꿀 재주를 가진 ‘영웅 이전의 인물’. 욕심 많은 놀부는 민중을 이끄는 숨은 영웅. 흥부와 놀부는 우리가 아는 그 얘기 속 그 인물들이 아니었다. 과연 그 들은 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을까. 아니 왜 남남 그 이상이 됐을까.
 
상상력의 지점은 조선 헌종 시설을 배경으로 설정해 작법을 이어간다. 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그 뒤에는 지배층의 권력 농단이 자리한다. 살기 위해 살아가는 민초와 빼앗기 위해 살아가는 양반들의 이율배반적 공생은 사회 시스템의 마비를 불어온다. 혼란의 틈에서 영웅은 탄생한다고 하던가. ‘흥부’는 조혁(고 김주혁)을 만난다. 그는 국가 폭력에 희생된 어린이들과 힘없는 노비들을 거둬들이며 부락을 이끄는 리더다. 양반이지만 양반이 아닌 백성이다. 그 반대에는 형 조항리(정진영)가 있다. 그는 입신양명을 위해선 혈연도 끊어버리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다. 빼앗고 또 빼앗을 뿐이다. 그리고 넘봐선 안 될 ‘그것’까지 넘본다.
 
영화 '흥부'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에서 폭발하는 민초들의 모습은 지난 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촛불’의 모습이다. ‘백성이 먼저다’는 이 간결한 명제는 반상의 법도가 엄연한 조선시대에선 체제 반역이다. 조혁은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면 땅이 하늘이 되는 세상이 열리지 않겠나’라면서 꿈을 꾼다. 조항리는 ‘꿈을 꾸는 것조차 죄’라고 일갈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은 시스템을 전복시키려 한다. 꿈을 꾸면서.
 
우리에겐 너무도 명징한 메시지다. 이미 경험을 했고, 꿈을 꿨던 우리다. ‘흥부’는 땅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열어 낸 ‘촛불’의 힘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한다. 쾌감을 느껴야 한다. 전복의 카타르시스가 다가와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조류의 얕은 물결로만 보인다. 너무도 명확하게 다가오는 일종의 기시감 때문일까. 이미 ‘악은 벌을 받고 선은 복을 받는다’는 고전 ‘흥부전’의 결말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영화 ‘흥부’ 역시 이 결말을 전복시킬 명분 자체가 없음을 알고 있다. 태생적으로 이 영화는 ‘흥부전’의 모태에서 출발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촛불의 찬란함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영화 '흥부'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결과적으로 작법의 문제에서 기시감을 찾아야 할 듯하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그 시기에 만약 이 영화가 공개됐다면 어떤 흐름을 타게 됐을까. 관객들의 공감은 어떤 지점을 향하게 됐을까. 조혁의 꿈은 과연 꿈이 아닌 실제가 됐을까. 흥부의 재주는 진정 세상을 뒤바꾸는 영웅의 힘으로 그려졌을까. 조항리의 꿈(이미 누구나 알고 있지만)은 일장춘몽이었을까.
 
영화 ‘흥부’는 과한 출발을 선택했단 해석 밖에는 나오지 못할 듯하다. 두 형제의 얘기 속에 숨은 ‘무엇’을 건드리면서 시대적 사회상과 시스템 오류를 짚어내려는 시도는 과하고 또 과했다. 영화적 작법과 풀이로 ‘퉁’을 친다고 해도 관객의 이해력을 설득시킬 과정과 방법의 고민은 분명히 있어야 했다. 그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흥부'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당극’이란 방식을 취하면서 영화적 환상으로 결말을 풀어낸 지점은 도통 관객의 이해력을 돕지도 이끌지도 못한다. ‘해학’이란 고전의 ‘완전함’을 잘못 이끌어 낸 안타까운 장면일 뿐이었다.
 
그 꿈 안에서 웃고 떠드는 배우들의 모습도 쉽게 가슴으로 다가오진 못한다. 너무도 명확한 성격 탓에 오히려 관람의 선입견이 생기고 얘기의 축을 끌어가지 못한 채 끌려가는 인상이 다분하다. 이미지의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고인이 된 김주혁의 ‘조혁’이 그나마 살아 숨 쉬는 인물로 ‘흥부’의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영화 '흥부'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텍스트(시나리오) 단계에서의 명확함은 분명했을 듯하다. 하지만 영상으로 끌어내는 담금질의 과정이 문제가 된 듯하다. 꽤 단단한 얘기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오는 14일 개봉.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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