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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몰리는 대학 청소노동자들)②"부족한 재정, 왜 청소노동자가 책임지나"
"학생수 감소가 직접적 원인"…"최저임금 부담 전가" 비판도
2018-02-12 06:00:00 2018-02-12 06:00:00
[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긴축재정 속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한태식 동국대학교 총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결국 대학들이 선택한 방법은 가장 쉬운 인건비 절감이었다. 현재 동국대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인원 감축 문제도 한 총장의 신년사에서 예고된 셈이다. ‘사람부터 줄이자’는 식의 재정 절약 발상은 다른 주요 대학들도 같았다.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청소노동자 인원 감축에 나섰다.
 
청소노동자 인원감축이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
 
장기적인 학령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학들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실제 정부도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향후 대학정원을 2만명 가까이 줄일 계획이다. 학위를 팔아 운영되는 대학에게 학생 감소는 치명적이다. 때문에 대학들은 자연스레 취업률 같은 수치에 목을 매며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거나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대학들이 선택한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 중 하나가 구성원의 일부인 교내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런 대학의 모습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씁쓸하기만 하다.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재민(25)씨는 “학생도 청소노동자도 모두가 동국대 구성원”이라며 “동국대가 제시한 시급 1만5000원짜리 근로장학금 역시 청소노동자를 짓밟고 마련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교의 어려운 재정운영 상태를 같은 구성원인 청소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를 졸업한 김진영(26)씨는 “학교가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긴 이래로 지난 1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돈이 없다며 노동자들과 충돌을 빚어왔다”며 “모교의 행태가 많이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학교가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부담을 청소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노동분야 전문 변호사는 “올해 최저임금이 7530원이다. 역대 가장 높다. 재원인 학생 수가 주는 데 청소노동자 임금은 올려야 한다. 학교 입장에서는 계약직인 청소노동자들 급여가 당장 눈에 띌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쌓이는 적립금, 어디로 갔나
 
대학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면서 대학 내 적립금도 다시 한 번 거론되고 있다.
 
11일 교육부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최근 논란을 빚은 대학들의 지난 2016년 기준 적립금 규모는 홍익대 7429억원, 연세대 5201억원, 고려대 3437억원, 숭실대 959억원, 동국대 673억원이다. 특히, 홍익대를 비롯해 연세대, 고려대의 경우 사립대 적립금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는 ‘부자대학’들이다.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문제 삼는 것 역시 이들 대학이 쌓아둔 적립금이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 김선기 교선국장은 “동국대는 지난해에만 145억원의 기부금이 입금됐다”며 “청소노동자 8명 인건비를 지불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 정도로 학교 재정이 취약하다면 전북 남원의 서남대처럼 폐교하는 게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학들은 적립금에 ‘꼬리표’가 달려있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적립금 대부분은 장학금이나 연구기금 등 처음부터 목적성이 뚜렷한 기부금”이라며 “청소노동자분들에게 장학금으로 들어온 기부금을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학들은 원금에 손실을 내지 않으려고 기부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직접고용' 나서는 대학도 없지 않아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대학 청소용역직 노사관계 실태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서울 주요 대학 38곳 중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곳은 가톨릭대·삼육대·서경대·서울기독대·서울시립대 등 5곳에 불과했다. 반면에 연세대와 서울대 등 등 17곳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었고, 건국대와 세종대 등 14곳은 직·간접 고용이 섞여 있는 형태였다.
 
이런 가운데 일부 대학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 중 한곳인 서울대학교는 지난 7일 교내 청소·경비·시설 용역 파견 근로자 76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서울대는 계약이 종료되는 근로자부터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 오는 2019년 4월까지 모든 용역 근로자를 정규직화 시킬 계획이다.
 
이번 결정으로 서울대는 연간 약 229억원의 인건비와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향후 관련 정책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관심과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립대학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반대와 정부 보호지침 확대 적용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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