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근절정책에 중기업계 "늦었지만 환영…경각심 높이는 계기 되길"
수사권부여 등 기대감…"범죄라는 인식 확고해져야"
입력 : 2018-02-12 18:30:28 수정 : 2018-02-12 18:30:28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중기부, 산업부, 공정위, 특허청, 경찰청, 대검찰청 등 6개 유관부처가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함께 마련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대책'에 대해 그간 기술탈취 피해를 주장해온 중소기업인들은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기술탈취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돼왔다.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이 정당한 기술거래나 인수합병(M&A) 성과로 이어지기보다는 기술탈취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허술한 법망을 피해 이뤄지는 편법적 기술탈취가 오랫동안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된 결과, 업계에선 'M&A보다 기술탈취가 더 쉽다'는 자조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12일 발표된 대책에는 이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종속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기술탈취를 이제는 타파해야 한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7일 첫 당정협의 이후 업계 및 전문가들로부터 받은 여러 제안들이 반영돼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중기업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최대 10배까지 증가하게 된 점과 더불어 일부 기술탈취 피해에 대해 검·경 수사가 이뤄지고 침해 혐의 기업에도 기술침해 입증책임이 따르게 됐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중앙회는 "이번 범정부 차원의 대책으로 기술탈취 피해기업의 가장 큰 애로였던 피해사실 입증과 소송의 장기화에 따른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조사 및 수사권한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해 피해기업의 사후구제 가능성을 높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강화를 통해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경각심도 크게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현재 대기업과 기술탈취 관련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들도 반가움을 표했다. 먼저 최근 현대차와 손해배상 소송 진행 중 1심에서 패소한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의 경우 이번 기술탈취 관련 대책에 대해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관련 부처들이 나서고 중기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하니 일단 감사할 따름"이라며 "앞으로는 기술탈취 혐의가 발생할 경우 검·경 수사를 한다는 것 아닌가. 수사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험상 민사만으로는 기술탈취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게 최용설 대표의 생각이다. 최 대표는 "그 동안 국정감사에서도 기술탈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산업부, 교문위 통해서 우리가 관련 자료를 얻어 제출했지만 재판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쪽에서 부인하면 결국 '증거없음'으로 결론 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형사소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날 나온 대책에 따르면 앞으로 기술탈취 사건이 발생하면 검·경 등 수사기관 및 중기부, 공정위, 특허청 등 관련부처가 협력해 피해사건을 신속히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수사가 필요한 사안으로는 기술유출 범죄, 지재권 침해, 상표·영업비밀·디자인 침해, 중대한 기술유출 범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이 언급됐다.
 
또한 피해 입증책임이 피해기업 외에 침해 혐의 기업에도 부과되는데, 이에 대해 성경제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지금까지는 침해 혐의 기업이 '기술을 침해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끝이었는데, '나는 당신하고 이렇게 다르게 특허를 만들었기 때문에 침해가 아니다'라고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침해 혐의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관련 내용에 대해 함구하기가 힘들어진다.
 
현대차와 기술탈취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인 또 다른 기업인 오엔씨엔지니어링의 박재국 대표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환영한다. 우리 말고 앞으로 다른 기업들이라도 혜택을 보게 되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법·제도 마련과 별개로 기술탈취에 대한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기술을 티 안 나게 훔치면 기업에선 오히려 높게 평가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며 "외국생활을 오래한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간다. 해외에선 기술탈취를 하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고 일갈했다.
 
결국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대기업 기술탈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박 대표는 "작은 것을 훔치면 도둑이라고 하면서 훨씬 큰 이익을 도둑질하는 것에 대해선 관대한 게 한국사회"라며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 중에서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12일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5일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오른쪽)와 박재국 오엔씨엔지니어링 대표가 기술탈취 근절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모습. 사진/중소기업중앙회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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