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 ‘독전’, 집착과 광기의 끝에 존재한 ‘자아붕괴’
기존 범죄 장르와 다른 독창성 배제 캐릭터 감정 ‘집중’
최근 상업영화 ‘트랜드’와 차별성→이해영 감독 ‘연출력’
입력 : 2018-05-16 11:57:18 수정 : 2018-05-16 14:20: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독전’, 독한 자들의 전쟁이다. 마약 수사대와 실체를 알 수 없는 범죄 조직 수장의 대결이다. 익히 알고 있었고 한 번쯤은 봤고 들어 봤던 얘기다. 결과적으로 ‘독전’은 장르 안에서 독창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베일에 쌓인 범죄자의 이분법적 구성이다. 두 사람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 속에서 느끼는 긴박감과 긴장감이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전부다. 사실 이런 지점으로 끌고 가면 ‘독전’은 처음부터 답습이고 재생일 뿐이다. 이 영화는 기존 범죄극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 가지 다른 지점을 투입한다. 감정이다. 선과 악이 극명한 범죄극에서 감정은 분명 불필요한 지점이다. 그렇다고 최근 상업 영화 속 선악 구조 경계 파괴 트랜드를 ‘독전’이 가져오지도 않았다. ‘독전’이 그리는 감정은 점차 끓어 오르는 자기 파괴 연민처럼 처연하다. 종국에는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모른 채 무너지는 결과를 받아 들이는 과정을 말한다.
 
 
 
영화는 절제를 배제한 채 생(生)의 느낌이 충만할 정도로 각각 캐릭터에 숨을 불어 넣었다. 공교롭게도 시작 지점은 숨결이 완벽하게 배제된 북유럽 설원이 배경이다. 푸석거리고 바스러질 듯한 원호(조진웅)의 얼굴은 메말라 있다. 숨결은 고사하고 생의 기운인 물 한 방울 느낄 수 없는 마른 감정이다. 그가 바라보는 지점은 어딜까. 카메라는 거대한 설원 위를 달리는 원호의 차를 내려다 본다. 이미 관객들은 시작과 함께 ‘독전’의 마지막을 본다. 자가발화(自家發火)다. 이미 원호는 모든 것이 타버리고 없어진 껍데기일 뿐이다. 그를 태운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저 집착에서 시작됐다. 마약 수사대 팀장 원호는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 수장 ‘이 선생’ 검거에 올인 한다. 형사로서의 사명감이다. 그저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사명감이 집착이 됐다. 자신이 보호하던 미성년자 전과자 수정이 죽는다. 이 선생 조직에 프락치로 원호가 투입시켰다. 결국 죽었다. 복수심인지 사명감인지는 모른다. 원호는 더욱 이 선생에게 집착한다. 이젠 감정적이다.
 
영화 '독전' 스틸. 사진/NEW
 
‘락’(류준열)이란 인물이 있다. 감정이 없다. 말을 안 한다. 이 선생이 계획한 폭발 사고로 인해 어머니가 죽는다. 락은 이 선생 조직의 연락책이다. 그는 어머니 복수를 위해 원호와 손을 잡는다. 이 선생을 잡기 위해 두 사람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이제 이 선생 실체를 추적하면 된다. 두 사람은 감정적이다. 잡아야 한다. 복수를 해야 한다. 이제 두 사람은 차근차근 이 선생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 선생’이란 호칭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실재하는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인물 일까. 두 사람은 진실에 접근할수록 혼란스럽다. 원호와 락은 복수를 위한 오월동주(吳越同舟)를 택했지만 목적 자체가 다르다. 그 다른 목적을 뒷받침 하기 위한 인물들이 곁가지처럼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선생’ 후견인 오연옥(김성령), ‘이 선생’ 조직 간부 ‘선창’(박해준), 중국 마약 조직 보스이자 아시아 최대 마약 거물 진하림(고 김주혁), 그리고 베일에 쌓인 의문의 남자 ‘브라이언’(차승원).
 
영화 '독전' 스틸. 사진/NEW
 
이제 이들에게 이 선생의 실체는 목적이 아니다. 그들 모두가 이 실체 없는 ‘이 선생’을 수단으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모든 인물들이 바라보는 집착의 대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결국 관객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집착으로 시작된 감정이 복수로 대상화가 이뤄졌지만 마지막에는 목적 자체가 무너지는 순간을 바라보게 된다. 인물들 모두가 각기 다른 지점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착을 하고 목적을 드러내 버렸다. 그럼 이 선생은 과연 무엇 이었을까. 그저 인물들의 집착과 혼란 그리고 광기를 끄집어 내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모든 인물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의 복잡성을 그려내기 위한 장치가 바로 이 선생이었나?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일까.
 
영화는 중반 이후까지 강력한 메타포(은유)이자 맥거핀(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영화적 장치)으로서 ‘이 선생’을 적극 활용한다. 스토리 전체를 장식하는 미장센(영화적 미학)과 결합된 이 메타포와 맥거핀의 활용성은 기묘하고 기괴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범죄극 자체가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권선징악’이 완성될 때의 쾌감이 오롯한 존재감이라면, ‘독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알 수 없는 대상화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 낸 자아 붕괴에 집중한다. 이미 영화 속에서 원호는 수 차례 되뇌이고 중얼거린다. “누군가에게 광적으로 집착을 하면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긴다”라고.
 
영화 '독전' 스틸. 사진/NEW
 
‘독전’은 결과적으로 광기와 집착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믿음이 실체와 마주했을 때 급격한 붕괴로 이어지는 유약한 자아(自我)를 역설적으로 그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독하고 강하고 비열하고 냉혹하고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들이다. 이 같은 인물 구성과 제목의 순(順)배치는 반대 급부로 ‘독전’의 세상 속 인물들 모두가 스스로의 유약함을 숨긴 채 살아가는 거짓된 인간성의 표본들이란 셈이다. 그래서 실체 없는 ‘이 선생’을 이 영화가 사용한 방식 자체에 수긍이 되는 것도 분명했다.
 
느와르적 스타일과 방식을 취한 듯 보이지만 ‘독전’은 분명하게 다르다. 오프닝에서 등장한 설원의 처연함은 궁극적으로 클로징에서 이유를 드러낸다. 그 지점이 ‘독전’의 목적이자 이유인 ‘붕괴’의 미장센인 셈이다.
 
영화 '독전' 스틸. 사진/NEW
 
덧붙여 최소한 연출자가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을 만든 이해영 감독이란 점만으로도 ‘독전’을 곱씹어 보이기에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봉은 오는 22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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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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