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양 전 대법원장의 '강 건너 불구경'
입력 : 2018-06-04 06:00:00 수정 : 2018-06-04 20:45:5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민 앞에 섰다. 본격적인 발언에 앞서 그는 '양보 할 수 없는 두 가지 한계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약 15분쯤 이어진 해명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거래는 결단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법관들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했다.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편향적 조치나 불이익 처분도 ’단언하건데 없다‘고 부인했다.
 
“평생 법관으로서 42년 지냈고, 법원이야말로 제 인생 전부”라면서 내놓은 이날의 해명은 일견 진솔돼 보였다. 특히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뭘 반박하고 전 대법원과 현 대법원간의 갈등 내지는 대립을 심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대목에서는 찰나 ‘과연 대법원장의 풍모답다’는 인상도 받게 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전체적으로 이어 보면 해명 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어느 것 하나 사실에 근거한 것 없이 교과서나 윤리규범에나 나오는 말 일색이었다. 전체적인 발언의 방향 역시 ‘아랫사람들이 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일’로 쏠렸다.
 
양 대법원장의 이런 ‘강 건너 불구경’식 인식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음에 기인한다. 이날 발언 모두에 언급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는 말만 봐도 “제가 있을 때 ‘법원행정처에서 뭔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고,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이런 그의 인식은 입장표명 후에 약 15분간 이어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오죽했으면 ‘특별조사단 조사를 왜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400명이 조사를 받았다는데 사안을 밝히지 못했다면 그 이상 뭐가 있겠느냐’는 답을 했을까.
 
사태 초기 사법행정, 더 정확히는 ‘상고법원제’에 반대하는 법관들에 대한 뒷조사 논란을 묻자 양 전 대법원장은 ‘뒷조사 했다는 내용이 확실히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모를 수가 없다. 상고법원제는 그의 숙원 사업이었고 ‘뒷조사’란 바로 이를 반대하는 법관들에 대한 불법 사찰이었다. 이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자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전 대법관)를 진상조사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조사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사람이 양 전 대법원장이다. 이 교수로부터 2017년 4월19일 1차 조사결과를 직접 보고 받은 사람도 바로 그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사법농단’ 사태로 확대시킨 ‘재판거래’ 문건 의혹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한 마디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입장이다. ‘재판거래’ 의혹이 상황을 심각하게 끌고 온 데에는 양 전 대법원장 자신의 책임이 크다. 물론, 특별조사단 결론은 해당 문건을 작성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를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고 볼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대의 사실을 배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스스로 말했듯 ‘재판거래’의 언급 자체를 모욕이라고 생각했다면,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를 묻는 특별조사단 조사에 적극 응했어야 했다. 현직에 있을 당시 이런 내용이 보고됐다면, 작성자와 보고자를 엄중 문책했어야 함은 물론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이번 기자회견은 사법농단 의혹 사태의 수습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말해주는 예고편이다. 국정농단 당사자들이 그랬듯, 이번 일도 과정과 결과가 엄연히 참혹한데 책임자만 모르는 일이거나 오직 국민을 위한 일을 후임자들이 곡해한 일로 가기 십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본인 말 대로 법원이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건전한 조직이라면, 이제라도 '강 건너 불구경'을 끝내고 ‘내 일’임을 받아들여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 법원에 대한 본인의 사랑을 실천하는 마지막 길이며, 42년간 법관 생활의 품격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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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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