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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병준의 국가주의를 비판한다
2018-08-09 07:00:00 2018-08-09 07: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때아닌 '국가주의' 논쟁이 날씨만큼이나 무더운 한국정치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자율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이념을 프로파간다하는 정당이 대한민국에 출현했다. 세상에! 1968년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서구 마르크스 정당보다 더 급진적인 좌파 정당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새로운 급진좌파 선동의 진원지가 한국에서 보수주의를 넘어 꼴보수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자유한국당이라는 점이다. 한국당이 무더위에 정신이 혼미해진 걸까. 홍준표의 종북몰이와 극우 노선이 몰락하고 비상대책위가 꾸려지더니, 그 비대위가 내세우고 있는 정치적 진로가 서구 사회민주주의 노선보다 더 급진적인 자율주의(Autonomism)라니!
 
50년 전, 68혁명은 유럽정치를 뒤흔들어 놨고, 그 혁명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 정치 노선이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다. 이 운동을 사상적으로 지도했던 안토니오 네그리는 급진좌파에 테러리즘을 주도했다는 혐의까지 겹쳐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택하기까지 했다. 이탈리아라면 자율주의 못지않게 국가주의 논쟁에도 친숙한 나라다. 안토니오 네그리보다 한 시대 앞에 그의 지적 스승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있었고, 그 대척점에는 무솔리니가 있었다. 그는 파시스트다. 굳이 번역하면, 국가사회주의 정도로 번역된다. 좀 더 압축적으로 번역하면 국가주의다. 그런데, 21세기 대낮에 대한민국에서 국가주의가 출현하다니, 111년 만의 무더위에 한국정치가 정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시계를 8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이는 다름 아닌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상대를 1940년대의 국가주의로, 자신의 정당을 1960년대의 자율주의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편적인 정책 담론에서 말하는 국가주의, 자율주의와 맥락이 맞질 않는다. 지금 문재인정부의 정책을 국가주의라고 비판하지만, 그 맥락은 파시스트의 국가주의와는 달라 보인다. 혹시 그는 문재인정부를 국가주의가 아니라 국가사회주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까지 과격하게 발언하는 것을 자제하다 엉뚱하게도 짝퉁 파시스트로 몰아붙인 것일까.
 
자율주의는 김 위원장의 의도와는 개념적으로 정반대다. 그가 말하는 자율주의는 "국가 주도가 아니라 자율의 정신 아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잠재력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율'을 강조하다가 '자율주의'로 진화 발전했다. 그러나 말의 성찬이다. 자율의 강조가 자율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마 온건개혁주의 노선에 충실한 교수 출신의 행정학자가 급진좌파로 낙인 찍혀 망명까지 해야 했던 이탈리아 급진 막시스트인 안토니오 네그리와 친구가 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에 대한 애정을 갖고 찬찬히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새로운 모델의 중심에는 시장과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국가는 이제 시장과 공동체를 보다 자유롭게 하는 한편, 약자를 보호하고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일 등 시장과 공동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이런 주장은 아주 낯익다. 그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를 할 때 매번 사용하던 문법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한국의 진보정부에서 나왔던 것들이다. 당시 세계의 진보세력들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위력에 짓눌렸고, 최선의 정책 담론으로 제기됐던 게 '제3의 길, '사회투자국가' 등이었다. 큰 정책 범주에서 보면 참여정부마저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구나 김병준 실장은 행정학자답게 당시 정부에서도 신자유주의의 행정학적 방법인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블렀다. 위기의 원인은 김병준식의 자율주의였다. 금융위기 직전 월스트리트의 금융권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을 담당하는 워싱턴의 의회와 정부에서도 자율주의가 팽배했다. 파생상품 등 시장의 혁신을 공공부문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시장의 자율과 자기 정화, 자기 조절장치에 맡겨두는 게 최상의 공공정책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정부의 금융에 대한 규제 완화와 시장의 자율주의에 대한 신화는 통제받지 않은 고삐풀린 자본주의를 낳았고, 그 결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김병준식의 자율주의 결과다. 이 자율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위기를 통해 세계적으로 증명됐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김 위원장의 비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신자유주의자들이 공공성 강화를 정책으로 한 진보정부를 비난할 때 단골로 사용하던 것들이다. 그는 10년 전 이 프레임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반면 문재인정부는 지난 10년의 반성을 통해 촛불혁명이 만든 정부다. 
 
김병준 위원장의 비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와 시장, 공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변화와 모색을 담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정책 담론은 오히려 역사 속의 유물이 된 1940년대 국가주의와 1960년대 자율주의를 시대 착오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병준의 자율주의는 '짝퉁 신자유주의'에 다름 아니다. 한국당과 김병준은 고장난 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시대 인식이 우려스럽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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