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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소수의견' 대법관이 내민 한발, '씨앗'이 됐네
최종영 대법원장 시절, 이강국 당시 대법관 혼자 '무죄' 주장
"인간에 대한 존엄성 심각히 침해…대체 논의 할 시기가 됐다"
2018-11-01 18:44:09 2018-11-01 18:44:15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대법원이 1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 대법관 13명 중 8명이 찬성했다.
 
14년 전인 2004년 7월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같은 사건을 심리했다. 현역병 입영통지를 받고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입영을 기피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최명진씨에 대한 상고심이었다. 최종영 대법원장을 필두로 다수 대법관들이 부정적 의견을 냈다. 최씨는 상고가 기각되고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2007년 7월15일 오전 국회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강국 당시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이 소장은 2000~2006년까지 대법관으로 근무하다가 퇴임한 뒤 헌재소장으로 임명됐다. 사진/뉴시스
 
최 대법원장 등 대법관 12명은 “헌법 39조1항이 규정한 국방의 의무는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위해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과 영토의 완전성을 수호할 의무로서 납세의 의무와 더불어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며 “남북분단의 특수한 현실적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보다 강조되어도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어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위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홀로 반대 의견을 낸 이강국 대법관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종교적 양심의 결정에 따라 병역 의무를 거부한 피고인에게 국가의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인 형벌을 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피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입법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위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고 한다면 그 시기와 기준 및 대상, 절차와 방법 등 관련되는 모든 문제들을 검토하고 논의를 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 이 대법관의 판단은 현실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28일, 김모씨 등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해당조항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 등에서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6명, 각하 3명의 의견으로 위헌 판결했다. 대체복무제 도입이 결정된 것이다. 다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 처벌조항에 대한 위헌 판단에서 재판관 의견이 4대 4로 팽팽히 갈려 결국 합헌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로써 병역법상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인정하면서 비로소 종교적 양심에 의한 병역 거부가 인정되게 됐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양심에 대해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신념이 깊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하는 것이고, 확고하다는 것은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서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진실하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 신념과 관련한 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러한 신념은 진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에 대한 판단은 법관의 재량이다. 따라서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가 기소당한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항시 존재한다. 이때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사실은 병역 거부자가 소명해야 한다. 재판부는 "적어도 검사가 이에 대한 반박으로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동원 대법관은 별개 의견으로 "국방의 의무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보다 더 우선시되는 의무"라면서 "국가 안전보장에 우려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진정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은 '종교적 양심'은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김 대법관 등은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수의견이 제시한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도록 충분하고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없다"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상고에서 파기환송을 받아 낸 오승헌씨는 선고 직후 "대법원의 용감한 판결에 정말 감사하다. 국민의 높은 수준과 관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직 930여건의 판결이 남았다. 모든 판결이 전향적으로 선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기소돼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백종건 변호사에 대한 변호사등록을 긍정적으로 재심사하기로 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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