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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유신 맞서 양심 지킨 고 이영구 판사 기린다
'긴급조치 위반' 학생들 무죄 판결...법과 원칙 지키다가 좌천되기도
2018-11-14 17:42:15 2018-11-14 17:42:21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지금도 그때 실형을 선고한 학생들에게는 미안하다."
 
검찰과 정보기관의 재판에 대한 노골적 압박이 당연시되던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모든 압박을 물리치고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고 이영구 판사가 생전 자신을 향한 언론과 법조계의 쏟아지는 찬사에 한 말이다.
 
오는 18일 이 판사가 세상을 떠난 지 꼬박 1년이 된다. 지난 1933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1962년 청주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고인은 서울민형사지법 영등포지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1976년 교내시위를 주도해 기소된 '5·22 사건'의 주역 중 대학생 2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했다. 당시 정권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판결로 '서울대가 최전방이고 영등포 형사재판장이 최고사령부인데 이 판결로 정권의 방어체제가 무너졌다'고 난리가 났으나, 이 판사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 판사는 1976년 11월 수업 도중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비판한 혐의로 기소된 서문여고 교사에 대해서도 "1인 정권은 집권자의 정치 활동에 있어서 반복돼 왔고 또 향후 반복 가능한 과거 내지는 장래의 역사적 사실이므로 그 자체가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결을 선고받은 221명 중 유일한 무죄 판결이었다.
 
이 판사가 서울대생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주자 정권은 당시 대법원장에게 이영구 판사를 좌천시키라고 압력을 가했고, 서문여고 교사에 대한 긴급조치 9호 위반 무죄판결 이후에는 그 압력이 더욱 거세졌다. 이 판사는 무죄 판결 후 2개월이 채 안 된 1977년 1월4일 인사 관행을 깨고 전주지법으로 전보돼 사실상 좌천됐으나,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사표를 내지 않고 일단 전주지법에 부임했다가 한 달 후 사직하고 법복을 벗었다.
 
유신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판결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 판사는 법원을 떠난 후에도 사법부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그가 생전 "사법권의 독립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법관 개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개개의 사건에서 그것을 지켰느냐는 법관 자신의 구차스러운 변명이 아니라 국민의 혜안이 더 정확하게 판단해 왔다. 그것이 지켜지지 아니했다면 제아무리 미사여구와 그럴싸한 논리를 판결문에서 전개했던들 국민은 재판을 신뢰하거나 승복하지 않는다"고 남긴 말은 두고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부는 이 판사에 대해 사법 정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대법원도 이번 고 이영구 판사의 1주기를 맞아 16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대법원 1층 법원전시관에서 '고 이영구 판사 1주기 추모전'을 개최한다.
 
16일 오전 11시30분 열리는 추모전 개막식에는 이 판사의 유족 및 친지와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인을 기린다. 또 고인과 인연이 있는 최광률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김문희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등 원로 법조인들도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영구 판사의 1주기를 맞아 고인의 생애를 추모하고 재판의 독립을 수호한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번 추모전을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재인(가운데) 대통령이 지난 9월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고 이영구 판사 부인 김종숙(오른쪽)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달한 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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