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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불황 지속, 주머니 챙기자" 덩치 줄이고 현금 늘려
현금 보유액 증가, 부동산 매각, 비주력 사업 정리도…템포 늦춰 미래 대비
2019-03-13 00:00:00 2019-03-13 11:02:50
[뉴스토마토 김진양·왕해나 기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들이 현금 보유액을 늘리는 한편, 비주력 사업 매각을 통해 덩치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올해 전 세계 경제 불황이 본격화할 것에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한편, 한발 뒤에서 시장 판도를 주시하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요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현금,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 상품, 장기 정기예금을 합한 수치)이 크게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전자기업들을 중심으로 현금 보유액이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이하 연결 기준)은 총 104조2100억원으로, 전년 말(83조6000억원)보다 25%나 늘며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호조로 인해 당기순이익은 44조3400억원에 달한 반면 시설투자액은 전년(43조4000억원)보다 대폭 줄어든 29조4000억원 수준에 머문 점이 영향을 미쳤다.
 
 
 
LG전자도 지난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4조2704억원으로 전년 3조3506억원보다 27% 늘었다. 삼성전기는 2017년말 5246억원에서 지난해말 1조2024억원으로 129%, LG이노텍은 같은 기간 3695억원에서 6212억원으로 68%, 삼성SDI는 1조2609억원에서 1조6118억원으로 22% 늘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조3690억원을 보유하며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기업들이 현금 보유액을 늘린 것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대비해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현금 보유액이 많으면 경영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실적 부진이 이어졌을 경우에는 자본 잠식을 막고 단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다. 또 설비와 기술 투자를 유연하게 집행하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인수합병(M&A)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이 양호했던 기업들이 현금을 쌓는 추세”라면서 “경제 불황에다 불안한 시국까지 겹쳐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기회를 위한 준비를 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매각, 비주력 사업 정리 등 조직 효율성 제고를 통한 현금 확보 작업도 한창이다. LG는 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판토스 지분을 처분하고 서브원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지분을 매각했다. LG전자는 연료전지 자회사인 LG퓨얼셀시스템즈 청산에 나섰다. 유상증자 형태로 LG퓨얼셀시스템즈에 2500억원 넘게 투입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던 탓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차원에서 투자 우선순위가 높은 인공지능(AI), 로봇, 전장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발 액정표시장치(LCD) 가격 하락의 타격을 받은 LG디스플레이는 폴란드 법인이 보유한 700억원 규모 부동산 매각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는 전년보다 81% 늘어난 5569억원어치의 유형자산을 매각했다. 의료기기사업부 체외진단기 사업 매각 절차도 추진중이다. 삼성전기는 그룹의 첫 중국 진출 사업장인 둥관법인의 청산작업을 진행 중이다. 1990년대에는 스피커, 오디오데크, 키보드 등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주력기지였지만 이후 업황 하락으로 인해 사업 중단과 시설 매각이 이어졌다. 삼성전기 둥관법인은 향후 톈진법인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전자업계보다 더 큰 불황에 직면한 자동차 업계도 군살 빼기에 한창이다. 자동차 업계의 맏형격인 현대차그룹은 최근 대졸 공채를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한편, 생산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중국 사업의 대대적 개편도 예고했다. 현대차 베이징 1공장, 기아차 옌청 1공장 등 중국 시장 개척의 시발점이 됐던 생산라인들의 폐쇄가 검토 대상에 올라있다. 양적성장 중심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그룹은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인력 재배치를 통한 인건비 절감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전략차종 중심으로 라인업을 개편하고 친환경차를 활용한 시장 공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GM도 본사 차원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미래 자동차 주도권 확보를 위해 비용 절감에 나서려는 것.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등이 이 같은 목적 아래 단행됐다.
 
식품업계도 달라진 외식 트렌드에 맞춰 변화가 한창이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가정간편식(HMR) 시장 확대와 혼밥 문화 확산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대표됐던 외식 산업이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CJ푸드빌은 빕스와 계절밥상 매장을 각각 21개, 25개 정리했고 이랜드파크의 애슐리와 자연별곡도 각각 18개, 3개 폐점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CJ푸드빌이 이달 말 빕스 베이징리두점의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 선택과 집중을 강화키로 했다. 
 
김진양·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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