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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이사회’ 시대 도래)‘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어디서 왔나
이사회 안건 중 99.6% 원안대로 통과…사추위에도 총수나 CEO 입김
2019-03-18 07:00:00 2019-03-18 07:10:24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올해도 기업들의 사외이사 선임 공시가 이어지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도 어느덧 20년. 당시 정부는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막고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사외이사가 ‘거수기’, 총수일가나 경영진의 ‘방패막이’라는 비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가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일이 드문데다 사외이사 추천에는 총수 또는 최고경영자(CEO)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탓이다. 
 
IMF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기업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기업구조조정 추진방안에는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도 개선안들이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사외이사제도였다. 기업의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인해서 기업경영의 효율성이 저해되고 이로 인한 경영투명성 저하가 경제위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도입된 유가증권상장규정이 개정안은 상장법인은 총 이사수의 4분의 1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법인은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를 구성하고 총 이사수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했다. 자산총액이 1000억원 미만인 벤처기업은 이 제도에서 예외로 두었다.
 
 
 
하지만 그 도입 취지와는 달리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탓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2018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보면 253개 상장사의 1년간(2017년 5월∼2018년 4월) 이사회 안건 5984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고작 0.43%인 26건에 불과했다. 99.57%가 원안대로 통과됐다는 뜻이다. 특히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안건 810건 중 부결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단 2건이 수정 또는 조건부 가결됐을 뿐이다. 
 
사외이사가 10년 이상 장기 재직하는 일이 빈번하고 전직 임원이었던 사람이 사외이사를 맡는 경우도 많아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멀어지기 어려운 점이 작용했다.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는 무려 21년간 농심의 사외이사 직을 맡았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재선임되지 않지만 시가총액 100대 기업 가운데 현직 최장수 사외이사로 꼽힌다. 셀트리온의 경우 사외이사 6명 중 3명이 10년 넘게 사외이사를 맡고 있고 효성도 10년 이상 재직한 사외이사가 있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10년 넘게 한 회사의 사외이사로 활동할 경우 대주주 및 경영진 견제라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사추위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발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상장회사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독립성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95곳의 사추위 설치 회사 중 전원 사외이사로 사추위를 구성한 회사는 16곳(기업집단 7개)으로 전체 95곳 가운데 17%에 불과했다. 대표이사가 사추위 위원인 회사는 58곳(기업집단 23개)으로 61%에 달했다. 농심, KCC의 경우 사추위에 총수 일가 2명이 참여하고 있고 셀트리온 헬스케어, E1, KCC,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등은 총수 일가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유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대표이사가 사외이사 후보 추천 절차에 관여하면 어떤 후보자도 경영진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갖출 수 없고 경영진의 사외이사 지배가 용이해져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가 독립성이 결여되자 대주주, 경영진의 부정이나 불법을 가려주기 위해 로비를 벌이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주요 기업 사외이사 자리에는 정부 고위 관료, 판·검사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기준 국내 100대 그룹의 사외이사 출신 현황을 조사한 결과, 사외이사 991명 중 관료 출신이 352명으로 35.5%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이어 학계(30.6%, 303명), 재계(19.5%, 193명), 언론(3.4%, 34명) 등의 순이었다. 관료 출신의 경우에도 법원·검찰 출신이 27.3%(96명)으로 가장 많은데 이어 청와대(21.9%, 77명), 관세청·국세청(16.8%, 59명) 출신이 뒤를 이었다. 포춘 100대 기업의 경우 사외이사는 재계 출신이 60% 이상이고 관료 및 학계출신은 10% 미만인 것과는 반대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외이사들 중 경쟁사 CEO 출신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전문성 있는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올해는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로 주주총회의 분위기가 다를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결정했다. 올해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첫 번째 정기 주주총회다. 삼성전자(8.95%) SK㈜(8.34%) LG전자(9.09%)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주요 안건에 대해서는 적극적 의사표시를 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이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많아질 경우를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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