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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0년’ 정의선호 본격화, 향후 행보는?
2019-03-25 00:00:00 2019-03-25 00: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입사 20년 만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명실상부 현대 대표가 되면서 창업주이자 할아버지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아버지 정몽구 회장에 이어 3세 경영을 본격화다. 범 현대가도 오너 3세 시대가 열렸다. 정 수석 부회장의 실권 장악으로 현대차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를 넘어 차세대 미래형 자동차 기업으로의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장손인 정 수석 부회장은 지난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경영에 입문했다.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부사장) 등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정 수석 부회장은 2005년 3월 기아차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1998년 부도로 쓰러진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됐지만 여전히 실적이 좋지 않았다. 이에 정 수석 부회장은 폭스바겐 총괄디자이너 출신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알려진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기아차를 상징하는 패밀리룩 ‘호랑이코’ 그릴 도입이 슈라이어 영입에 따른 결과물이다. 디자인으로 현대차와의 차별화를 선언한 정 수석 부회장의 전략은 주효했고, 2008년 기아차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했다.
 
정 수석 부회장의 실력 위주 외부 인재 영입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 4월에는 BMW에서 30년간 고성능 차 개발을 담당한 알버트 비어만이 합류했다. 벤틀리 수석디자이너 출신의 루크 동커볼케 현대·기아차 디자인 최고책임자(CDO),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제네시스사업부장, BMW 출신의 토마스 쉬미에라 상품전략본부장 등 최근 중용된 글로벌 인재 영입에도 정 수석 부회장의 노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비어만의 경우 외국인 최초로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았으며, 이번 주주총회를 거쳐 사내이사로도 선임됐다.
 
2009년 8월 현대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취임한 정 수석 부회장은 현대차의 고급화 및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힘썼다. 현대차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제네시스의 출범을 이끈 것이 정 수석 부회장이다. 제네시스는 미국 제이디파워가 발표한 ‘2017 신차품질조사’에서 미국·유럽·일본 등 13개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정 수석 ㅁ부회장은 력셔리 세단 ‘G90’ ‘G80’ ‘G70’를 출시해 제네시스 브랜드의 승용 라인업을 완성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지난 22일 주주총회 직후 화상시스템을 이용한 글로벌 컨퍼런스 이사회를 개최하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현대모비스
 
한국경제의 신화로 불리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현대차그룹의 초석을 다졌다면, '뚝심경영'으로 대표되는 정몽구 회장은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다음 차례인 정 수석 부회장의 스타일은 '혁신경영'으로 평가된다. 제조업 기반의 현대차그룹에 거센 혁신의 바람이 기대되는 이유다.
 
유연한 근무 환경의 변화는 대표적인 정의선식 혁신경영의 결과물이다. 정 수석 부회장은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선 지난해 말부터 직급 체계 변화라는 파격을 시도했다. 수직적 조직구조를 수평적이고 유연하게 변화시켜 창의성과 혁신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미다. 정 수석 부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개혁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직급 체계를 점차 전 계열사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자율 복장 제도의 도입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사내 완전 자율 복장 제도를 시행했다. 정 수석 부회장은 임직원과의 소통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사장 시절 직원의 상가(喪家)를 방문해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미 현대차그룹 곳곳에서 정 수석 부회장의 혁신경영 방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정 수석 부회장에게 닥친 숙제는 내연기관인 자동차 기업을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그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미래차 개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수소연료전지차(FCEV) 개발을 직접 지휘하면서 2013년 투싼 FCEV를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했고, 지난해는 FCEV 전용차인 넥쏘를 론칭하는 등 수소차 시장을 개척했다. 지난해 9월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의 기조연설에서는 자동차산업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판매 비중을 현재 3%(13만5000대)에서 2025년 16%(103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이 중 수소차는 지난해 3000대에서 2030년 50만대로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최근 미국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업체 ‘미고’, 싱가포르의 차량 호출 업체인 ‘그랩’, 미국 자율주행 전문기업 ‘오로라’ 등과 협업하기로 한 것에서도 정 수석 부회장 주도로 현대차그룹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는 인도 최대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인 ‘올라’에 역대 최대 단일 투자 규모인 3억달러(약 3384억원)를 투자하는 등 전략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전세계 스타트업 기업과 협업을 주도하는 것은 소극적이었던 과거의 그룹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 수석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이 빠르게 바뀔 것”이라며 “제조업체를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한 정 수석 부회장의 광폭 행보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박준형 기자 j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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