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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세월호 추모관이 필요한 까닭
2019-03-26 06:00:00 2019-03-26 06:00:00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들은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11살에 잃고 평생 우울증으로 고통받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면서 이 말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도 세 살배기 아들 알료사를 잃고 죽을 만큼 절망했다. 그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황야로 순례를 떠났고 그런 고통과 경험은 세계의 명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탄생시켰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도 이 처참한 고통을 지난 2014년 4월16일 경험해야 했다. 진도 팽목항 인근 해역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꽃다운 아이들이 사라지던 날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믿기 어려울 만큼 어이없었던 세월호 참사,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대한민국 정부…세월호가 우리를 부끄럽고 절망하게 하는 이유다.
 
1708일간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걸려있던 광화문 천막이 지난주 걷혔다. 영정사진들은 작은 상자 하나하나에 담겨 광장을 떠났지만 최종적으로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정비계획에 맞춰 유가족이 내린 결정이라지만 착잡하다. 정부는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허망하게 간 아이들이 머물 장소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희생자 가족들이 맘 편히 넋이라도 기릴 수 있고, 또한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들이 기억할 수 있는 기억공간으로 세월호 추모관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그날 희생된 학생들의 책상, 의자, 유품들이 안산 단원고의 기억교실에 모여 있다가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졌다고는 하지만,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희생자들도 함께 추모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기념제(commemoration)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기념제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민족의식을 보존하고 귀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조직하는 의례다. 국가가 전적으로 맡는 기념제에는 고위 관료들의 참석 의무도 있으며 공동의 기억을 공고히 하기 위해 시민들을 불러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의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이벤트가 된다. 기념제는 흔히 종전(終戰)이나 차별법 폐지, 국가적 영웅이나 발명자의 쾌거 등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행했던 테러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추모관을 짓겠다고 직접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해 9월9일 테러 희생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연중 기념행사에서 추모관(Musee-memorial)을 짓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는 추모관을 짓기를 희망하며 당장 시작하길 원한다”라고 희생자 대표들과 장관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전 대통령, ‘불복하는 프랑스’의 장-뤽 멜랑숑(Jean-Luc Melenchon) 대표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 선언하고 기념제를 위한 국경일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 같은 계획은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 위원회가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추모관을 즉시 착공해 연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성도 높이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테러 희생자 협회와 집단사고 전국 연합회’가 개최한 기념식에 참가해 테러 희생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트라우마가 있는 희생자를 돌보기 위해 CNRR(Centre national de ressources et de resilience·외상 센터)를 창설할 것을 약속했다. 이 센터는 대학 부속 병원에 설치하고 외상후장애자들을 전담할 부서를 마련할 계획이다.
 
2017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2개월 후인 7월14일 니스에서 주관한 기념식 등 테러 희생자 추모행사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 2018년 오드(Aude)시에서 벌어진 인질극 당시 인질을 구하다 사망한 아르노 벨트람(Arnaud Beltrame) 대령을 추모하는 추모식에도 참석했다. 프랑스는 2015년 초부터 이슬람국가(IS) 테러로 246명이 죽었다.
 
니콜 벨루베(Nicole Belloubet) 법무부 장관과 아네스 뷔쟁(Agnes Buzyn) 연대·보건장관은 지난 2월22일 ‘유럽희생자의 날’을 맞아 프랑스 북부도시 릴(Lille)에서 CNRR 개막식을 거행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약속은 일사천리로 실행되는 중이다.
 
세월호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각종 테러 이상으로 우리 국민들을 전율케 한 사건이다.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를 우리 국민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노란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51%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재해 대응 체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응답을 했다. 정부도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여전히 아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이 문제를 개선할 의지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지난 연말 강릉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가스중독 사고로 대성고 아이들이 희생되어 부모들의 애간장을 녹인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을 그냥 기억만 해서는 안 된다. 기억하되 안전의식을 일상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를 기념하는 추모제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추모제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민족의식을 보존하고 본보기로서 귀감이 되도록 공식적으로 조직하는 의례가 아니던가.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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