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구광모 “그들은 버리고 있다”
입력 : 2019-04-29 00:00:00 수정 : 2019-04-29 16:09:2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사업이 적자가 나는 건 기업인에게 큰 죄악이지만, 흑자난다고 자랑할 건 아니다. 전무나 부사장이 해도 충분한 거다. 사장이 해야할 일은 무엇이냐. 지금 돈을 버는 핵심 사업이 5년 후에도 잘될 거 같느냐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뭘 할 것인지. 그걸 나하고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대화에서 늘 이런 관점을 유지했다고 한다. 선친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자신의 역할이 그렇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 접어야 될 사업과 계속 이어나가야 할 사업을 결정하고, 끌고 간다면 얼마동안 끌고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 그것이 오너라는 것이다.
 
‘포기경영’ 또는 ‘버림경영’의 핵심은 적자사업을 접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의 ‘포기경영’은 의미가 다르다. 먼저 선대 회장 때부터 이어져 온 사업들 가운데, 구조개편의 지향점과 맞지 않지만 감히 전문 경영인들이 쉽게 던질 수 없었던 미련의 이슈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재계 3~4세가 경영의 전면으로 올라서면서 이러한 과거의 흔적 지우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경현대차 3공장에서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과 한화, 롯데가 이뤄진 석유화학·방위산업 계열사 빅딜은 이 부회장은 직접 결정한 것이었다. 삼성측에 따르면, 두 부문 계열사 매각건은 느닷없이 추진된게 아니었다. 이 부회장은 전무 시절이던 지난 2008년부터 계열사 CEO들에게 석유화학 계열사를 매각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는 이들 계열사가 실적이 좋을 때였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이 부회장 의견의 핵심은 독일 바스프(BASF)였다. 바스프는 어느 업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난공불락이었고, 전 세계 인류와 관련된 모든 산업과 사업에서 글로벌 1~2위를 하는 일본 업체들조차 유일하게 못 따라간 분야가 바스프가 속한 석유화학과 제약 부문이었다. 글로벌 1위 회사가 워낙 강하니, 이 부회장은 삼성이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워도 석유화학은 바스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들을 팔고 그나마 모든 것을 걸고 따라갈 수 있는, 1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전자 IT에 집중하자는 게 그 이유였다.
 
삼성테크윈 등 방산 계열사를 매각한 이유는 소비재를 파는 삼성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비난이 커질 수 밖에 없으며, 사업을 유지해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적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의 다음 대상이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금융 계열사들에게도 비슷한 화두를 이미 던져놨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금융의 세세한 건 모른다고 인정했지만 이 분야도 아무리 잘해봐야 삼성이 1등을 못할 거라고 보고 있다고 알려졌다. 다만, 큰 그림을 보는 이 부회장의 역할에서 금융 계열사 사장들에게도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해나가야 할지, 미래는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라고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결과가 삼성의 미래와 융합되지 않을 경우 금융 계열사들과의 아름다운 이별도 머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재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구 회장의 LG전자 스마트폰 국내 생산 중단 결정은 사실 시장에서 더 바랐단 사안이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데다가, 그룹의 인화 문화에서 비롯된 상생의식에 입각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스마트폰 만큼은 최소한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LG전자는 글로벌 아웃소싱 제한에 따른 부품 수급비용 상승 및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 등을 흡수하느라 한 대를 팔고 남는 이윤이 매우 적었다. 여기에 삼성전자에 비해서도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모델별 생산 대수는 규모의 경제를 살리지 못했고, 결국 3년간 누적적자가 3조원 가까이 쌓이는 등 어려움이 지속됐다. 그러면서 가까스로 구 회장이 큰 결단을 내렸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는 “LG 스마트폰은 품질 면에서 결코 이렇게 밀려날 만큼 품질이 나쁘지 않았기에 해외생산으로 원가구조를 개선했다면 그렇게 남긴 돈으로 마케팅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면서 “그랬다면 지금보다 좀 더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1공장 가동중단 및 또는 중단 검토도 같은 맥락이다. 정 부회장이 그룹을 책임지기 전부터 현대·기아차의 중국 사업은 밑바닥을 쳤다. 회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미 바뀐 시장에서 과거의 방식대로만 대처했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반등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겠지만 이미 베이징 등 현대·기아차가 강세를 보였던 시장에서도 존재감이 떨어졌고, 아직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내륙 시장 진출도 중국 정부의 견제에 막혀 적기에 추진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용단이 당장 현대·기아차에게는 상처로 남겠지만, 미래를 위해선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라면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중국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변화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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